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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일주일 전, 앞 논에 나이 지긋한 농부가 탈탈거리는 기계로 모내기를 했다. 분홍빛 복숭아꽃도 붉은빛 명자나무 꽃도 봄비에, 봄바람에 흩날리며 지고 말았다. 일주일 사이 낮은 초여름 날씨가 되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금낭화가 활짝 피고 삼년 전에 심은 사과나무 묘목이 처음 꽃을 피웠다. 농부 아내가 모를 허리에 둘러매고 논을 다시 찾았다. 모를 한 줌 쥐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굽혔다 폈다 기계가 남기고 간 빈자리에 모를 꾹꾹 심는다. 더보기
점봉산 얼레지 2002년 5월 중순에 점봉산에 든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군 진동계곡으로 갔다. 이곳은 1998년 2월 초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겨울에 야생동물 흔적을 쫒아서 진동계곡에서 곰배령을 지나 단목령을 넘어 미천골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같이 간 사람들과 하룻밤 민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 6시에 산에 들면서 맨밥과 된장 한 숟가락씩 담긴 도시락을 하나씩 챙겼다. 산에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동의나물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조금 더 올라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참나물과 곰취를 뜯었다. 그러고는 계곡물에 훌훌 씻어 배낭에 넣었다. 조금씩 오를수록 뿌리에서 오줌 지린내가 난다는 쥐오줌풀도 있고, 1미터나 되어 보이는 이파리로 커다란 왕관 모양을 한 관중도 있었다. 벌깨덩굴, 피나물도 꽃이 피어.. 더보기
제비꽃 돋아나는 이파리가 고깔을 닮은 고깔제비꽃 방안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니 작은 보랏빛 망울들이 마른풀 사이로 비친다. 마른풀을 걷어 내자 작은 제비꽃이 수북수북 피어 있다. 제비꽃은 사오월이면 냉이 꽃다지와 함께 어디서든 흔히 피는 꽃이다. 어릴 때는 제비꽃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동네 어른들은 오랑캐꽃이라고 불렀다. 사오월에 먹을거리가 바닥 난 오랑캐가 쳐내려올 때 꽃이 핀다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은 토끼풀 꽃이나 제비꽃을 꽃줄기 채 꺾어 반지를 만들어 끼고 놀았다. 제비꽃을 서로 걸고 잡아당기며 꽃싸움도 했다. 그래서 오랑캐꽃 반지꽃 씨름꽃이라 불렀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이름은 많았지만 다른 제비꽃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자연 그림을 그리면서 알았다. 조금씩 다른 갖가지 제비꽃 낮은 산.. 더보기
지렁이 똥 책 《지렁이가 흙 똥을 누었어》 가운데 다섯 해 전 봄에 작업실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다. 마당에 조그만 텃밭이 있는 시골집이다. 봄이니 곧바로 먹을 채소를 심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텃밭에 쪼그려 앉아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은 까맣게 잊은 채로. 텃밭에 채소를 심으려고 흙을 뒤집어도 지렁이가 꿈틀, 김을 매면서 호미질을 해도 지렁이가 꿈틀. 뒷마당 밤나무 밑에 쌓인 가랑잎을 뒤지면 지렁이 서너 마리가 꿈틀꿈틀, 마당 여기저기에 지렁이가 살았다. 동물은 먹은 대로 똥을 눈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흙 똥을 눈다. 흙 똥이 탑 같이 높게 쌓이기도 하고 성처럼 길게 이어져 쌓이기도 했다. 메마른 듯 동글동글 쌓인 똥, 부드럽게 몽글몽글 쌓인 똥, 푹푹 납작하게 퍼진 똥, 조금 .. 더보기
꽃다지 봄이면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꽃다지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다 젊은 엄마나 아이들과 만나 꽃다지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 가운데 고작 한두 사람이 알거나 아무도 모를 때가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흔하디흔한 꽃다지를 잘 모른다. 봄이 오면 들로 산으로 나물 캐러 많이들 간다. 들에서 나는 봄나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달래, 냉이, 쑥이 으뜸이겠지만, 꽃다지도 달래 냉이에 버금가는 봄나물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은 냉이만큼 즐겨 먹지 않지만 냉이처럼 슬쩍 데쳐서 묻혀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알고 보면 냉이와 꽃다지는 친구 사이다. 꽃이 피는 시기나 꽃 모양을 보면 아주 비슷하다. 그리고 사는 곳도 같다. 이른 봄부터 늦은 봄까지 볕이 잘 드는 들에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냉이와 꽃다지는 핀다.. 더보기
앞마당 쑥새 작업실 마당에 철따라 많은 새가 드나든다. 방울새, 때까지, 박새, 딱새, 노랑지빠귀, 호반새, 노랑턱멧새…… 언젠가는 참새를 잡으려고 참매가 날아든 적도 있다. 추운 겨울에 새들은 무리지어 날아들 때가 많다. 그 가운데 머리깃을 자주 세우는 쑥새가 있다. 쑥새는 가을에 우리나라를 찾아와 봄에 떠나는 흔한 겨울철새다. 풀씨나 열매를 즐겨 먹는다. 게으른 집주인이 겨울을 나는 새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마당에 풀을 제대로 뽑지 않아 덮인 눈 사이로 풀씨가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두껍게 얼어붙은 눈밭을 두리번두리번, 잰 걸음으로 풀씨를 찾아 헤매는 쑥새가 겨울철 굶주리는 야생동물을 떠올리게 한다. 더보기
설악산 물두꺼비 수컷이 암컷을 부둥켜안고 겨울잠을 자는 물두꺼비 설악산 가는골에 갔다가 물두꺼비를 만났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물두꺼비는 높고 깊은 산골짜기를 타고 맑은 물에서만 산다. 물두꺼비는 두꺼비보다 몸집이 작고 두꺼비와 달리 눈 뒤에 고막이 드러나지 않는다. 봄에 짝짓기를 하는 두꺼비나 다른 개구리와는 다르게 물두꺼비는 가을부터 알을 낳는 봄까지 짝짓기를 한 채 물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행여 떨어져 헤어질세라 작은 수컷이 덩치 큰 암컷을 꼭 부둥켜안고 기나긴 사랑을 나눈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양서류가 사라지고 있다. 물두꺼비도 점점 사라진다. 더보기
전주천 전주천에서 잰 몸놀림으로 먹이를 찾는 백할미새 천안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잠시 짬을 내 전주천을 다녀왔다. 전주 시내를 흐르는 전주천은 다른 도시를 흐르는 개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곳곳에 둑을 쌓고 산책로도 만들어 놓았다. 전주천 그렇지만 한가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미 새에게 사람이 익숙해 진 것일까? 웬만큼 다가가도 그저 자기 할 일을 한다. 쇠오리, 흰뺨검둥오리가 먹이활동을 하고 깃털을 다듬고 백할미새는 암수가 사랑싸움을 하며 실랑이를 벌인다. 중대백로 기지개를 켜는 쇠오리 수컷 쇠오리 수컷 쇠오리 암컷〔오리는 거의 암수 깃털색이 다른데 수컷이 화려하다〕 흰뺨검둥오리 잠수를 하지 않고 머리만 물속에 넣고 먹이를 찾는 흰뺨검둥오리와 쇠오리 함께 모여 깃털을 다듬는 쇠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돌 틈에서 먹이.. 더보기
물닭 - 백학저수지 백학저수지에 날아든 물닭 날씨가 쌀쌀해지면 백학저수지에 물닭이 날아든다. 검은 몸 빛깔에 흰 부리와 흰 이마가 뚜렷한 물닭은 물 위를 오갈 때면 마치 검은 옷에 흰 셔츠를 입은 멋쟁이 같다. 노 같은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 물닭은 잠수를 잘하고 헤엄도 잘 친다. 위험이 닥치면 물위를 박차고 뛰어 도망가기도 잘한다. 안개 낀 백학저수지 물닭이 노니는 백학저수지는 어릴 적 썰매 타는 곳이었다. 집 앞 논에서 썰매를 타다가 조금 답답하다 싶으면 몇몇이 모여 썰매를 둘러메고 백학저수지로 걸어갔다. 두껍게 언 널따란 저수지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썰매를 타고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었다. 찬바람 맞은 볼은 벌겋게 얼어도 속은 훈훈히 달아올랐다. 비룡대교 밑 안개 낀 임진강 그 때만해도 적성면에서 백학면으로 넘어.. 더보기
큰기러기 큰기러기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휭휭 분다. 창문 틈으로 새들어오는 바람에 발이 시리고 어깨가 오싹거린다. 마당에 산수유가 잎 지고 덩그러니 남아있을 때면 한강 하구와 임진강 하구에서 줄지어 나는 쇠기러기 떼를 흔히 본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시월부터 날아들어 봄까지 메운다. 좀 눈여겨 볼 것은 고양, 파주, 연천, 철원 같은 곳에서는 큰기러기를 보기 힘들다. 어쩌다 쇠기러기 무리에 한두 마리 섞여 있을 뿐이다. 큰기러기는 쇠기러기보다 몸집도 크지만 부리가 검고 끝 쪽에 노란 띠가 있다. 쇠기러기는 부리가 분홍빛이고 이마가 하얗다. 하늘을 날 때는 쇠기러기 배는 얼룩 무늬가 있고, 큰기러기 배는 하얗다. 큰기러기는 주남저수지나 우포늪 같은 남쪽으로 날아든다. 어느 전문가 말에 따르면 큰기러기는 남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