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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추 아침마다 서릿발이 하얗다. 벌써 영하 3도 추위가 10월 말에 다녀갔다. 나뭇잎이 단풍 들다가 얼어 죽을 것만 같다. 늦은 가을에 사람을 놀래키는 풀이 있다. 저수지 옆 후미진 자리에 핀 용담을 보고 놀랐다. 맑은 보랏빛 꽃이 피는 칼잎용담이다 맑은 진분홍 꽃이 피는 산부추도 그렇다. 온통 단풍 들고 가랑잎이 뒹구는 날, 환한 산부추 꽃을 만나면 화들짝 놀란다. 귀한 꽃이라서가 아니다. 꽃을 기대하기 힘든 때에 꽃이 피기 때문이다. 꽃대나 이파리를 보면 산부추와 부추는 많이 닮았다. 그렇지만 꽃 피는 시기와 꽃빛깔은 다르다. 부추는 여름에 하양 꽃이 핀다. 산부추는 가을부터 늦가을까지 진분홍 꽃이 핀다. 꽃빛깔은 다르지만 열매는 서로 닮았다. 산부추는 이름 그대로 산에서 사는 부추다. 옆 집 밤나무 이파.. 더보기
가을 새벽 오랜만에 가을 바닷가 새벽길을 걷는다. 갈대 칠면초가 즐비한 순천만 농주리다. 맑고 차가운 안개가 차분히 내려앉았다. 뚜루루 뚜루루루 뚜루 뚜루 뚜루루루루 흑두루미가 새벽공기를 가를 뿐, 잠잠하다. 새벽은 상큼하다. 뽀얗고 잔잔한 빛깔이다. 포근하고 아른아른한 분위기다. 또렷하지 않은 부드러운 깊이에 빠져든다. 노랑부리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가물가물 물안개처럼 흑두루미가 보인다. 갈대밭 너머 갯벌을 따라 줄지어 잠을 잤나보다. 한 가족 서너 가족 무리지어, 끼니 찾아 날아오른다. 주걱 같은 부리를 휘휘 저어 먹이를 잡는 노랑부리저어새도, 휘어진 긴 부리로 게를 잡는 알락꼬리마도요도 짧게 날았다 내려앉는다. 하늘에 빛줄기가 보인다. 동이 텄다. 앞은 산 그림자가 덮고, 먼 곳에 새벽빛이 비춘다. 낮볕에 까슬.. 더보기
가을 마당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 그래서 일까? 마당에 민들레가 피었다. 서양민들레야 볕바른 곳에서는 11월까지도 피지만 민들레는 흔치 않다. 지난 2013년 추석 즈음에도 민들레가 피어서 놀랐다. 10월 초부터 겨울손님 기러기 소리가 들리고 간간히 먼 하늘에 보인다. 산수유, 화살나무 열매가 붉게 익어 겨울 맞을 채비를 하는데도 마당에는 봄같이 민들레 괭이밥 꽃이 노랗게 피었다. 민들레 괭이밥만이 아니다. 붉은 명자나무 꽃이 피고, 좀씀바귀 꽃이 노란빛을 낸다. 작디작은 주름잎, 쇠별꽃, 털별꽃아재비 꽃이 마당 곳곳에 소복소복 피었다. 마당 여기저기에 배가 부른 사마귀, 좀사마귀가 알 낳을 자리를 찾는다. 먹이 사냥을 하려고 배추 이파리를 서성이는 사마귀도 많다. 앞마당 텃밭에는 김장을 담글 무, 배추, 갓.. 더보기
여름 죽살이 매해 집 둘레에 쌍살벌이 서너 개씩 집을 짓는다. 처마 밑에 가장 많이 짓는다. 비를 피할 수 있고, 적으로부터 안전하기도 한 모양이다. 올해는 왕바다리 집이 두 개가 보였다. 한 마리 왕바다리 암벌은 예전 같이 처마 밑에 집을 지었다. 높이 있는 벌집을 보려면 사다리를 놓아야 했다. 식구를 늘리면서 살다가 8월 말쯤 집을 비웠다. 또 다른 암벌은 사람 키 높이도 안 되는 집 벽 가운데쯤에 집을 지었다. 벌집을 보기는 참 편하고 좋았다. 방도 잘 늘리고 방에서는 애벌레가 잘 자랐다. 6월 19일, 벌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둘러봐도 부스러기 한 점 없다. 새가 습격한 것 같다. 새는 좋은 먹을거리를 얻었지만 쌍살벌은 후손을 퍼트리지 못했다. 2008년에는 벌집 지름이 20cm나 되게 크게 번창했었는데, .. 더보기
여름이 남기는 것 여름이면 많은 이가 계곡을, 바다를 찾는다. 자동차가 북적이고 사람이 우글거려도 간다. 계곡 돌멩이에 아주 작은 강도래 애벌레가 붙어 있다. 아니, 애벌레가 아니다. 강도래 애벌레는 물속에서 산다. 짝짓기 할 때가 되면 물 밖으로 나와 날개돋이를 한다. 이미 등을 가르고 날개돋이 한 강도래 허물이다. 여름에 어디를 가나 보이지 않는 매미 소리가 들린다. 쓰르람 쓰르람 쓰르람, 맴 맴 맴 맴 매애 맴 맴 매애애 땅속 생활을 마치고 땅 밖으로 나와 날개돋이 한 매미가 이른 아침부터 짝을 찾느라 울부짖는다. 사람도 어디에든 어김없는 흔적을 남긴다. 아름다운 숲이 보고, 출렁이는 맑은 물이 보고 있다. 호미곶 더보기
까마중 어릴 적에는 군것질거리가 흔치 않았다. 보리개떡이라도 손에 쥐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옥수수빵이 배급되었다. 학교 뒤뜰에 쇠죽을 쑬 만큼 커다란 가마솥 두 개가 걸렸고 장작불을 지펴서 미국에서 왔다는 전지분유를 끓였다. 말이 분유지, 돌덩이처럼 굳은 것을 망치로 깨서 끓였다. 뽀글뽀글 끓으면 분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누구나 돈 주고 무얼 사먹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철에 따라 자연에서 군것질거리를 찾았다. 찔레 순을 꺾어먹고, 오디를 따먹고, 개암을 따먹고……, 여럿이 괭이 삽을 들고 나와 칡뿌리를 캐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겨울에는 노랑쐐기나방 고치를 깨고 애벌레를 꺼내먹었다. 까마중 열매도 즐겨 먹던 것 가운데 하나다. 어릴 때는 토마토를 몰랐으니 열매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도 .. 더보기
울타리에 능소화가, 늪에는 연꽃이 집 울타리에 저절로 삼 년째 능소화가 핀다. 어디선가 씨앗이 굴러들어와 싹이 트고 자랐다. 가지 끝에 나는 꽃대에 화사한 꽃이 주렁주렁 달린다. 큼직큼직한 꽃이 기품이 있고, 점잖고 화려하다. 옛날에는 양반네만 심을 수 있어서 양반꽃이라 했단다.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어디서나 자라는 덩굴나무다. 줄기에 흡착뿌리가 있어서 벽이나 다른 나무를 잘 타고 오른다. 서울 강벽북로에 흐드러지게 피는 걸 보면 공해에 무척 강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꽃밭에는 100일 동안 붉게 꽃이 피는 백일홍(멕시코 원산)이 흔하다. 배롱나무도 100일 동안 꽃이 핀다고 백일홍, 백일홍나무라 부른다. 능소화도 6월 말부터 9월까지도 붉은 꽃이 피니 백일홍이라 할 만하다. 마당에 지름이 1미터쯤 되는 작은 연못을 만든 적이 있다. .. 더보기
메꽃과 나팔꽃 여름 들녘 길가에 메꽃이 흔하다. 둥글둥글 환하게 핀 연분홍빛 메꽃을 만나면 언제나 질리지도 않고 들여다본다. 들여다보고 들여다보아도 열매를 본 적이 없다. 가끔 학교나 도서관에서 독자를 만난다. 이야기를 하면서 화면에 연분홍빛 메꽃 그림이 비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나팔꽃’이라고 합창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는 꽃을 보니 반가웠을까? 하기야 깔때기 같은 꽃모양을 보면 비슷하기도 하다. 꽃빛깔이 연분홍 메꽃은 토종이다. 메꽃, 큰메꽃, 애기메꽃을 따져보아도 연분홍빛이다. 조금 여리고 진할 뿐, 바닷가에 사는 갯메꽃도 연분홍이다. 토종 같은 나팔꽃은 인도에서 옮겨왔다. 나팔꽃 꽃빛깔은 여러 가지다. 흰빛, 붉은빛, 남보랏빛, 진분홍빛…… 남빛도 있다. 메꽃 이파리는 길쭉하면서 끝이 뾰족해진다. 잎자루.. 더보기
동갑내기 농부 6,000㎡(1,800평) 양파 밭 그리 오랜 사이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 만나온 친구 같은 동갑내기 농부가 있다. 처음부터 농부는 아니었다. 젊은 날 직장생활을 하다가 많은 사람 반대를 뿌리치고 연천에 들어와 돼지를 키웠다. 돼지 생태를 연구하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1995년부터 키운 돼지를 2011년에 끝을 보고 말았다. 2011년에 구제역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살아있는 소 돼지를 땅에 파묻는 방송이 이어졌다. 커다랗게 파놓은 구덩이로 소 돼지가 곤두박질치듯 굴러 떨어졌다. 지금도 소름끼친다. 오죽하면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어났을까. 하지만 소용없었다. 구제역에 걸리지 않아도 근처에서 걸렸으면 모두 산채로 묻었다. 2010년 말에서 2011년 3월초까지 피해액이 3조원에 달했고 346만.. 더보기
알에서 깨어난 어린 백로 백로 둥지를 찾으니 어린 새 소리가 시끄럽다. 크나 작으나 어릴 때 소리는 어리다. 덩치가 크고 부리가 커도 어린 백로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일은 힘이 든다.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기르는 백로는 여전히 아름답다. 깃털을 다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살아남으려면 어미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미가 먹을 것을 물고 왔다. 어미 부리를 향해서 일어선다. 어미 부리를 물고 힘을 다해 읊조린다. “밥 줘!” 그래도 어미는 체할세라 새끼를 다독이면서 먹이를 토해낸다. 둥지마다 형편은 다르다. 조금 일찍 깨어나 커서 으스대는가 하면 하루 이틀 늦게 깨어나서 일어서는 것조차 힘겹다. 다 그렇게 자란다. 조금 먼저 날개돋이를 해도 하루 이틀 늦게 난들, 똑 같은 백로다. 가끔, 날고 싶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