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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궁시렁

동갑내기 농부

 

                                                                               6,000㎡(1,800평) 양파 밭

 

그리 오랜 사이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 만나온 친구 같은 동갑내기 농부가 있다.

 

처음부터 농부는 아니었다.

젊은 날 직장생활을 하다가

많은 사람 반대를 뿌리치고 연천에 들어와 돼지를 키웠다.

돼지 생태를 연구하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1995년부터 키운 돼지를 2011년에 끝을 보고 말았다.

 

2011년에 구제역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살아있는 소 돼지를 땅에 파묻는 방송이 이어졌다.

커다랗게 파놓은 구덩이로 소 돼지가 곤두박질치듯 굴러 떨어졌다.

지금도 소름끼친다.

오죽하면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어났을까.

하지만 소용없었다.

구제역에 걸리지 않아도 근처에서 걸렸으면 모두 산채로 묻었다.

2010년 말에서 2011년 3월초까지 피해액이 3조원에 달했고

346만 마리가 넘는 소 돼지를 산채로 묻었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묻는 일은 없었다.

 

이때까지는 이 농부를 몰랐다.

지난해에 술을 먹다가 돼지를 묻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농부가 기르는 돼지는 아주 깨끗했다고 한다.

문제는 옆 동네에서 구제역에 걸렸다.

정부 방침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이 묻어야 했다.

구덩이까지 소 돼지를 몰고 가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죽으러 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는 돼지 생태를 잘 알기에 구덩이 앞까지 이끌어주고는 돌아섰다.

기르고 있던 1,500마리 돼지가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농부는 말을 하다가 말끝이 흐려졌다.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짓누르는 고통으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고는 돼지 키우는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시작했다.

제초제나 화학비료 따위는 쓰지 않는 친환경농사를 했다.

벼와 감자 같은 곡식과 남새를 깨끗이 길러서 학교급식으로 쓴다.

 

                                                     풀밭 같은 양파 밭 너머로 임진강이 보인다.

 

 

                                                                              풀이 우거진 밭에서 양파 뽑기

 

 

며칠 전, 지난 가을에 심은 양파를 같이 뽑았다.

세 번 풀을 뽑았다는데도 떨어져서 보면 풀밭 같다.

비가 오지 않아서 땅이 돌덩이 같이 단단하다.

뽑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양파가 큰 것은 작은 단호박 만하다.

양파를 처음 심었는데도 아주 잘 되었다고 들 얼굴이 환하다.

 

양파 거두는 대로 참깨를 심는다고 한다.

친환경 먹을거리만 다루는 단체와 계약 재배다.

구제역 아픔을 딛고,

농부는 땅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얻고,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짓는다.

유기농으로 바꿀 채비를 하고, 공동농사를 생각한다.

아름다운 생각, 참 먹을거리가 보인다.

 

                                                                          같이 일하던 농부가 발견한 상황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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