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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끼 홀씨주머니 뒤꼍에 높이가 2미터 가까운 시멘트 옹벽이 있다. 옹벽은 볕이 드는 시간이 짧고 축축해서 늘 이끼가 낀다. 옹벽 옆에는 서너 명이 앉을만한 평상이 있었다. 어머니는 2년하고도 넉 달 전에 96년 삶을 마쳤다. 한쪽 팔다리가 불편했던 어머니는 잘 걷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뒤꼍에 있는 평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면 지팡이로 옹벽에 낀 이끼를 긁어냈다. 어머니는 이끼 낀 것이 보기 싫었을까? 보기 싫은 시멘트를 덮어주는 이끼가 고마웠지만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 일까? 이끼가 옹벽을 뒤덮었다. 겨울인데도 푸릇푸릇하고 불그레한 홀씨주머니가 돋았다. 작디작은 이끼라기보다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다. 얼어붙은 눈을 녹였다.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지로 올라온 최초 육상 식물.. 더보기
볕이 아쉬운 구렁이 나뭇잎이 단풍 들다 얼어붙어 빛깔을 잃었다. 몸을 움츠리게 하는 바람이 빛바랜 이파리를 떨군다. 시간이 가는 낙엽이 아쉬운지, 바래는 빛깔이 우울한지? 거의 매일 동 틀 무렵이면 알몸을 드러내는 나무를 본다. 집 울타리 잣나무에 곡선이 납작 붙어있다. 어두운 빛이 꿈틀꿈틀, 번뜩번뜩, 힘이 느껴진다. 나무 껍데기? 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 가만히 있다. 보기 드문 구렁이, 2m쯤 되는 아주 커다란 구렁이다. 구렁이가 크다지만 이만큼 큰 구렁이는 처음이다. 해바라기하는 걸까? 쉬는 걸까? 알 수 없다. 한참 뒤, 머리부터 천천히 조금씩 몸을 비틀었다. 잣나무 옆 철망울타리로 머리를 뻗었다. 그러고는 울타리 위에 사뿐히 앉았다. 어릴 적 기억이 났다. 구렁이는 집에서 같이 살았다. 부엌 벽에 있던 쥐구멍으로.. 더보기
빨간 열매 서리가 내리고, 배추와 무 이파리가 얼었다 녹는다. 늦은 벼 베기 하는 농부가 바빠도 둘레에서 영그는 빨간 열매가 속 태우는 마음을 누그린다. 가지가 잘리고 잘려도 늦가을이면 푸른 하늘에 빛나는 노박덩굴 열매. 검푸른 이파리에 숨어서 붉게 익는 주목 열매. 진딧물이 들끓어도 다시 이파리를 내는 찔레나무, 열매. 봄은 맑디맑은 꽃, 가을이면 새큼 달콤 맛을 주는 산수유 열매. 약이든 제상이든 달달한 맛을 주는 대추나무 열매. 사과나무 뿌리가 되는 검붉은 아그배나무 열매. 이파리가 붉어도, 더 할 수 없게 붉게 빛나는 화살나무 열매. 일 년을 다시 시작 하려는 가을에 붉게 익어가는 열매. 사람이 먹든, 새가 먹든, 털짐승이 먹든, 썩어 떨어져도 자연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어, 사는 흐름을 알린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