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2005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백담사에서 가는골로 가는 길 길을 떠나는 새벽, 눈을 뜨지만
뒹굴뒹굴한다. 왠지 걱정이 된다. 지난번 피골 답사 때 오랜만에 산에 오르면서 몸이 힘들었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그래도 피골 생각을 뒤로 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늦은 네 시쯤 백담사 입구에 이르렀고, 버스를 타고 백담사
앞에 다다르니 만나기로 약속한 박그림선생이 버스 안에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궁궐 같은 백담사에 방 한 칸을 얻고 전두환이 어떠니
주절주절 이야기 하다 저녁 여섯 시에 절밥 한 끼 얻어먹고 방에 들었다. 모기가 들까 걱정이 되어 불도 켜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일정과 박그림선생 지나온 이야기, 점 점 점. 도시와
다르게 산골은 자연 시간대로 흘렀다. 해가 지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오랜만에 아주 이른 저녁 일곱 시 반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 뒤척이다 가물가물 잠이 들 때쯤 솨아~ 소리가 들렸다. 그저 바람 소리려니 하고 잠이 들었다. 헌데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렸다. 밤 열 시쯤 덜커덕 문 여는 소리에 “비 오지요!” 했더니. 김 팀장이 “비와요!”모두 일어나 앞마루로 나와
앉았다. 빗소리 들으며 내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희미한 불빛에 대웅전 단청이 보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단청이 하늘에 떠있다. 사진기를 꺼내어
셔터를 눌러 보지만 신통치 않다. 밤 열 한 시나 되었을까. “도시에서는 이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네.” 마치 산골에 익숙해 진 듯 키득거리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새벽 다섯 시, 눈을 뜨니 날은 개어 있었다. 새벽 공기는 싸늘하다. 씻고 난 뒤 물기 마르지 않은 얼굴이 시리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새벽안개에 쌓인 백담사 주변을 사진으로 스케치 했다. 여섯 시에 아침공양을 하고, 지난밤 내린 비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아침 일곱 시 반,
여덟 시간 산행 계획을 잡고 가는골로 향했다. 촉촉이 젖어있는 길, 아직 물기 마르지 않은 풀과 나무,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지난밤 걱정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얼마 걷지 않아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물총새를 만났다. 물끄러미 쳐다보다 망원렌즈가 없으니 사진 찍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계곡을 따라 어렵지 않은 길을 걸었다. 산등성이 오르기를 앞두고 마실 물로 계곡물을 물병에 담았다.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박그림선생 말 한마디가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했다. 얼마 걷지 않아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만났다. 좁지만 흐트러지지 않은 길이 나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매 한 가지다. 힘을 아끼려고 다니기 쉬운 길을 고른다. 짐승 길을 따라 올라가다 산개구리를 만났다. 아직 어린 산개구리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박그림선생이 부른다. “여기 와 봐요 큰 녀석이 있네.” 아주 큰 산개구리가 눈만 껌뻑일 뿐 꼼짝 않고 있다. 생명체들은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 살아가지만, 이
녀석들은 산 속에서 어떻게 먹고 살아 가는지 궁금해진다. 가을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지난밤 비가 와서 그럴까? 작은 버섯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버섯 가운데 외피가 별 모양으로 갈라지고 둥근 구슬 하나 올려놓은 듯한 테두리방귀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생김새가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게 됐다. 얼마쯤 걸었을까, 산양 똥을 볼 수 있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에 산양 똥 무더기가 있다. 똥 가운데 좀 다른 똥이 섞여있다.
동글동글 떨어지지 않고 뭉쳐있다. 여름에 묽게 싼 산양 똥이라고 박그림선생이 일러준다.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다시 한 번 박그림선생
말이 들리고, 아주 가파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꼭 필요한 말 아니면 말 하지 말고, 발자국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산양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박그림선생이 귀띔해 주면서 이 지역에서 산양과 마주쳤던 이야기를 해 줬다.
숨죽이며 가파른 산길을 걸었다. 혹시 산양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가슴을 꽉 채웠다. 힘들지 않게 걷고 또 걸었다. 산양이 다니는 길이
보였다. 왼쪽은 낭떠러지, 오른쪽은 큰 바위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이 나있다. 길가 나무에는 얼마 지나지
않은 영역표시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조심조심 휘어진 산양 길을 따라 갔다. 길은 더 이상 없었다. 바위 낭떠러지가 앞에 있었다. 바위 낭떠러지엔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있다. 산양은 바위 절벽을 타고 건너편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산양이 다니는 길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따라 갈 수가 없다. 그
길을 포기하고 오른쪽 바위벽을 기어올랐다. 가느다란 나무에 몸을 맡기며 기어올랐다. 발밑에는 바위채송화 꽃이 시들어 가고 있다. 가파른 바위를
기어오르고 좁은 바윗길을 따라가서 산양이 머무는 자리를 만났다. 작고 예쁜 자리다. 그저 한 마리나 앉아 쉴 수 있을 만한 자리다. 영역표시와 함께 조금 시간이 지난 똥이 쌓여있다. 그 자리를
지나 위로 열 댓 걸음을 오르니 큰 자리가 또 있다. 뒤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바위 절벽, 앞은 툭 트인 전망, 전형적인 산양자리다. 이
자리엔 눈지 오래 되어서 하얗게 변해가는 똥부터 눈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빛을 띄는 똥까지 있다. 큰 발자국도 있다. 잠시 앉아 쉬는 동안 산양
기분을 느꼈다. 뒤로는 큰 바위가 감싸고 앞으로는 넓게 트인 풍광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맨 밑으로 처음 오르기 시작한 계곡 줄기가 보이고,
갖가지 나무, 구절초, 옆에 핀 당귀들이 욕심을 버리고 순박해지라고 일러준다. 산양이 다니는 좁은 낭떠러지 길을 가고 바위를 기어올랐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본다. 앞산에 바위 절벽들이 보인다. “저기 보이는 바위에는 다 산양 흔적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박그림선생이 일러준다.
절벽 아래는 바람에 누운 자작나무 흰 나무줄기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숨 돌리고 아주 큰 바위를 돌아서 올랐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길고 넓게 누워있다. 바위 앞에 산양이 누워 쉬던 자리가 있다. 흙에 몸 부빈 흔적이 남아있다. 지난번 박그림선생은 여기에서 산양과
마주쳤다고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산양 흔적이 보이면 막 들어가서
헤집어 놓는데, 그러면 우리가 조사를 할 수가 없어요. 주변을 먼저 살피고 한 쪽에서부터 천천히 살펴들어 가야 합니다.” 박그림선생 말에 따라
천천히 발밑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큰 바위 앞으로 구절초와 산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었다. 바위떡풀이 바위 여기저기에 붙어서 꽃을 피웠다. 앞에
가는 나무에는 오래 된 영역표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영역표시가 여러 개 있다. 큰 바위 밑으로 많은 산양 흔적들이 있다. 아마도 여러 마리가 모여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바위 밑으로
여러 무더기 똥이 있다. 한 곳은 산양 똥을 누가 퍼다 모아 놓은 듯이 쌓여 있다. 바위 앞으로는 산양 발자국이 쭉 늘어서 있다. 어린 산양들이
무리지어 지난 간 자국이다. 젖은 흙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린 산양들 숨결이 들리는 듯 하다. 산양 발자국 방향을 따라 언덕 위에 오르니 또
다른 똥 무더기가 있다. 여기에도 동글동글 검은 콩알 같은 똥과 여름에 묽게 싼 산양 똥이 섞여있다. 왜, 산양은 이렇게 험한 곳을 찾아 살아야
할까. 아마도 종족이 살아남기 위한 생활방식이 아닐까 싶다. 산양은
작은 뿔 두 개뿐, 맹수 공격을 막을만한 뾰족한 무기나 힘이 없다. 도망을 가야한다. 맹수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좁은 낭떠러지 길이나 험한
바위 절벽으로 도망을 가야한다. 우리가 보는 절경과는 다르게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보금자리도 뒤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막고, 앞은 낭떠러지여서 맹수들이 쉽게 다가 설 수 없는 곳을 택한다. 지금은 맹수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양을 해치는 적으로 사람이 남아
있다. 산양은 맹수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큰
바위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본 뒤 점심으로 주먹밥을 꺼냈다. 별 것 넣지 않고 참기름에 깨 몇 알 넣어 둥그렇게 뭉친 주먹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되었다. 넋을 잃고 주먹밥을 먹는데 온 몸이 근질 거렸다. 사진 찍는데 정신 팔려서 모기에 물린 자국이 부어올랐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치 헬리콥터 공습처럼 보였다.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밥을 먹었다. 그래도 이미 온 몸에 모기
바늘구멍이 났다. 밥을 먹은 뒤 잠시 모기 쫓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가 모기에 쫓겨 아래쪽으로 내려 왔다. 내려오는 길에 원시림을 보았다.
여기저기 늙어 쓰러진 나무, 쓰러진 나무에 파란 이끼와 갖가지 버섯이 피어나고 있다. 바위엔 파란 이끼가 끼고, 바닥엔 관중이 무리지어 자라고,
하늘로는 다래덩굴이 나무를 휘감으며 얽혀있다. 흙은 부엽토가 쌓여 발이 푹푹 빠진다. 이 것이 사람 간섭 받지 않은 자연 그대로 숲이 구나
싶었다. 정리 되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투고, 서로 도우며 제 모습을 찾아 살아가는 숲이 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는 짐승들 눈치를 보며 다래덩굴을
흔들어 다래 몇 알을 입에 넣었다. 달고 상큼한 맛이 온 몸에 퍼진다. 산길을 거의 내려와
낮게 고인 계곡물에 다다랐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과 한 알 꺼내어 나누어 먹는데 물이 살짝 움직였다. 가만가만 다가가보니 물두꺼비 한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둘레를 살펴보니 한 쌍이 아니다. 여러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물두꺼비는 짝짓기를 한 채로 겨울잠을 자는데 벌써
겨울잠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가 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쉬는데 도롱뇽 한 마리가 돌 틈으로
꼬물꼬물 기어간다. 꼬리치레도롱뇽이다. 눈이 툭 불거지고 꼬리가 몸보다 긴 꼬리치레도롱뇽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물을 보았다. 작은 물고기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어린 꼬리치레도롱뇽이었다. 몇 마리 어린 꼬리치레도롱뇽이 꼬리를 씰룩거리며 물속을 헤집고 다닌다.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올랐다. 살아 있는 물,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자연이
살아있다. 뭔가 희망이 보였다. 구석구석 살아있는 자연이 우리를 살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물을 등지고 한 시간쯤 걸어 내려와 늦은
네 시쯤 다시 백담사에 이르렀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사뿐사뿐했다. 산양 흔적을 비롯한 작은 생명들이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전두환이 속죄한다며 머물렀던 백담사, 그 뒤로 많은 건물을 지어 늘렸다. 우리는 까닭 없는 많은 목숨을 앗아 간 전두환을 미워하고, 몹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도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사람이 편하자고 개발을 하면서 많은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 작은 생명을 사람
목숨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자연 안에서 생명은 너나할 것 없이 똑 같은 가치를 가진다.
작은 생명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다. 지금도 편한데 얼마나 더 편해져야 사람 욕심이 멈출 수 있을까. 다 망가트려 놓고 복원한다며 호들갑
떠느니 지금 있는 것만이라도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개발을 많이하고 부유한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 옛 어른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삶을 배워야겠다. 함께 사는 길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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