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 그리기

작업일지 2008. 1. 30. 17:16 |

※ 이 글은 지난 2006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첫아이에게 보여 줄 책을 찾다가 책 그림을 시작했는데 십 오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첫 아이가 아기일 때 아기그림책을 만들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초등학생이 보는 도감을 만들며 아이와 함께 커 왔습니다. 십 오년 남짓한 시간동안 부끄러운 책 몇 권을 만들고 모자라는 책을 놓고 이야기하려니 좀 쑥스럽습니다. 그저 좀 위로를 하자면 자연을 담은 책을 만드는 한길을 왔다는 것뿐입니다. 처음부터 자연을 담은 그림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자연을 제대로 나타낸 그림책이나 도감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세밀화가’라는 말이 늘 따라 다녔습니다.


 지금껏 해 온 일을 보면 자연을 한 가운데 놓고 두 갈래 일을 해 왔습니다. 하나는 한 개체를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도감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그림책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1-1. 도감이란
 우리말 국어사전이 있는 것과 같이 자연사전이 도감입니다. 도감은 자연과학 기초이기도 하고 나라 자연자원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외국은 산업화가 빨리 이루어져 환경문제를 먼저 느낀 나라나 자연을 자산으로 본 나라들이 일찌감치 도감작업을 했습니다. 유럽은 이미 300년 전에, 미국은 1800년대에 도감작업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도감이 일본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에서 일본학자와 화가를 데려와 <조선 삼림도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연 자원을 약탈해 가려는 목적이었겠지요. 우리나라는 북녘에서 1960년대부터 도감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책도 여러 권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북녘도감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한 개체마다 실제 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개인이나 몇몇 출판사에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 안타깝습니다. 나라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작업을 할  필요가 있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1-2. 용어
 자연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을 ‘세밀화’라고 합니다. ‘세밀화’란 말을 십년 넘게 써 오다가 지금에 와서 보니 잘못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밀화’란 말속에는 기법만 들어 있고 그림 내용이나 그리는 사람 생각은 들어있지 않습니다.(일본은 ‘생태 미술가협회’라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생태 미술’이라고 부르는 듯싶습니다.) 용어를 그림의 내용과 그리는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어가 기법만 강조한 말이라 세밀화와 사진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언론에서는 늘 ‘세밀화’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사진 같은 그림’, ‘사진보다 더 정확한 그림’ 따위로 표현합니다. 사실 사진과 똑같다면 어렵사리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겠지요. 그림은 사람 눈으로 보고 마음을 담아서 나타내고 사진은 기계를 통해서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느낌부터 다릅니다. 사진은 한곳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곳은 초점이 흐려져 뭉개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림은 사람 눈으로 여기저기를 보고 필요한 만큼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 모두를 또렷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진은 배경과 함께 찍히기 때문에 나타내고자 하는 생명체 윤곽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림은 필요에 따라 배경을 그리지 않을 수도 있고 배경을 그리더라도 나타내고자하는 생명체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있는 대로 찍을 수밖에 없지만 그림은 필요에 따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빛의 상태나 주변 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쓰임새 차이로 보아야 합니다. 각자 필요한 곳에 쓰이면 됩니다. 모양이 복잡한 생명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림이 좋고, 전체 풍경이나 군락을 이루고 있는 생명체 모습은 사진이 훨씬 유리합니다.

 

1-3. 한 생명체를 그리기까지
 이제 한 생명체를 그리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보겠습니다. 외국에서는 대개 집단작업이라 여러 가지 지원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학자로부터 이론적인 지원이나 표본을 지원받는 따위입니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달라 모든 과정을 화가 혼자 합니다. 봄이면 흔히 보는 제비꽃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제비꽃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제비꽃, 호제비꽃,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노랑제비꽃, 흰제비꽃, 졸방제비꽃... .가장 먼저 많은 종류 제비꽃 가운데 제비꽃을 구별 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제비꽃 가운데 가장 제비꽃다운 것, 학문적으로 표본이 될만한 것을 골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기저기 책을 뒤져봐야 합니다.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까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골라 낼 수 있는 준비가 됐으면 채집하러 나갑니다. 채집할 것을 발견하면 자연 상태에 있는 제비꽃을 사진으로 꼼꼼히 찍습니다. 옮겨지면서 모양이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화분에 뿌리 하나 다치지 않게 옮겨 심어서 작업실로 옵니다. 밖에 있던 것이 실내로 오면 빨리 자랄 수도 있고, 꽃이 빨리 피고 질 수도 있기 때문에 다시 사진을 찍습니다. 빨리 바뀔 수 있는 꽃이나 열매를 중심으로 찍습니다. 채집과 기초취재, 자료조사가 끝나면 연필로 밑그림을 그립니다. 흑백으로 완벽하게 그려야 합니다. 여기서 연출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제비꽃은 같은 시기에 꽃봉오리도 있고 활짝 핀 꽃도 있고 시드는 꽃도 있고 열매도 있고 이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장에 이 요소들을 다 그려 넣어야 합니다. 밖에서 여러 개체를 보면서 자연스런 모양으로 연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밑그림이 끝날 때까지 일주일쯤 걸립니다. 그리고는 불판(light box)위에 놓고 채색하는 종이에 옮겨 그립니다. 채색이 끝나면 이주일쯤 걸립니다.


 어떻게 보면 있는 그대로 베껴내는 단순한 일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그림을 전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려는 생명체에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지 않으면 잘 그린 그림은 있지만 따뜻한 마음은 없는 그림이 되기 쉽습니다.

 

1-4. 자연그림이 있어야 하는 까닭
우리나라도 점점 도시화 됩니다.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살면서 자연과 멀어집니다. 그래서인지 점점 생명체를 구분하는 눈들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들판에 나가면 그 풀이 그 풀 같다고 합니다. 아주 다른 모양의 풀을 보면서도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 못하는 아이가 네발 달린 짐승은 다 멍멍이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 못하는 것도 똑같은 모양으로 도시화 되면서 퇴화하고 있는 감각이라고 여겨집니다. 도감 그림이 생명체를 구별하는 눈을 길러 주고 자연과 친숙해지는데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 <계절 그림책>
 그림책으로 나온 몇 권의 책도 자연이 가운데 있습니다.
 계절 그림책 가운데 1993년에 <심심해서 그랬어 >를 처음 그렸는데, 덤벙덤벙 그려서 부끄러운 책입니다. 다만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농촌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위안 삼는 책입니다. 도시에서 쓰레기더미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농촌 생활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려진 것들이 먼 옛날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도 산골짜기에서는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 곳을 중심으로 취재를 하고 다른 곳에서 취재한 것들을 조금씩 보태서 그렸습니다.


 여름은 경북 청송, 겨울은 북한산, 봄은 충북제천 운학리, 가을은 강원도 삼척 골말을 중심으로 취재했습니다. 네 권을 그리면서 어떤 것을 그리고 어떤 것은 그리지 않을 것인가를 무척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면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똑같은 모양으로 개량한 지붕, 어울리지 않게 서있는 전봇대, 흙 담 위에 덧 발라버린 시멘트 벽 따위 입니다. 그렇지만 스레트 지붕 같은 것은 한 시기를 대표하는 지붕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렸습니다.

 

 1996년에 그린 <우리끼리 가자>는 참 애착이 가는 책입니다. 무척 그리고 싶었던 흑백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린 입장에서는 의인화하지 않은 동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큰 동물들을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재미있는 동물 동작을 잡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봄 편인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그리려고 개발하지 않은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던 가운데 충북제천 운학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논은 많지 않고 밭은 온통 돌투성이인 마을이라 그런지 집집마다 돌담이 남아있고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을을 이야기 동선에 따라 취재하고 한 곳을 선택해서 구석구석 보고 취재했습니다. 봄에 소로 쟁기질 하는 모습은 이제 많지 않습니다. 쟁기가 나무대신 쇠로 만든 쟁기로 많이 바뀌어 예전처럼 쟁기질 하는 모습을 취재하느라 애먹기도 했습니다. 책 본문 둘째 장면에 시골 살림살이가 부엌 벽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은 실제로 운학리에서 본 집 그대로 옮겨 그렸습니다. 또 부엌문 위에 엄나무와 부엌문짝에 ‘해수(海水)’라고 쓴 종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것은, 부엌에 대한 책을 뒤적이다가 보고 그렸습니다. 엄나무는 가시가 많아 귀신이 못 들어오게 하고 ‘해수’를 거꾸로 붙여 놓은 것은 부엌에는 늘 불이 있으니까, 만약에 불이 나더라도 바닷물이 거꾸로 쏟아지듯이 불이 잘 꺼지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 마을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그려 넣기도 합니다. 그림 구석구석에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하더라도 자연 모습이나 전통 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려 넣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바빠요 바빠>는 2000년에 그렸습니다. 배경이 된 마을은 강원도 삼척에 있는 골말입니다. 굴피집을 그려보고 싶어 찾던 가운데 골말에 400년 된 굴피집과 너와집이 있다 해서 찾아갔습니다. 주변 마을을 돌면서 강원도 산골 느낌을 보고 그리려고 애썼습니다. 추운지방이라 그런지 실내구조가 지금 아파트 구조와 닮았습니다. 집안에 부엌, 마루, 외양간이 다 있습니다. 책 본문 가운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벽난로는 우리나라 전통 벽난로 입니다. 이름이 ‘고콜’인데 코를 닮았다고 해서 ‘코굴’이라고도 한답니다.

 

 이렇듯 뒤로 오면서 점점 재미있는 이야기책 이라기보다는 마을 자체나 집 따위에 더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며 취재해서 기록화처럼 그렸습니다. 네 권이 뜨문뜨문 그려진 것은 도감 작업과 같이 진행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계절이 지나가면 다음 해를 기다려서 취재하여 그려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봄 편인 <우리 순이 어디 가니>는 네 번의 봄을 보고 그렸나 봅니다.

 

3. <자연과 만나요>
 2000년 들어서면서 작고 흔하지만, 우리나라 책으로 나와 있지 않은 작은 생명을 찾아서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로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 >와 <개미가 날아올랐어 >를 그렸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개미 전쟁장면을 취재하기 위해서 그다지 좋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 흙바닥에 엎드려 몇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도록 싸우는지 그 다음날 가 보았을 때도 구석에서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쪽 여왕개미를 죽여야 싸움이 끝이 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먹이활동과 싸움장면을 이어서 그렸는데 150여 마리 개미를 그리느라고 꽤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세 번째 책으로 <지렁이가 흙 똥을 누었어 >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4. <도시 속 생명 이야기>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 작업 할 때쯤
 2000년 5월초, 점점 답답해 오는 도시생활을 거두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충북 괴산군에 있는 산골, 삼송리에 집을 얻어 들어갔습니다. 인공물로 가득 찬 도시가 싫었거니와 자연을 그리는 일과 삶터를 함께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집은 옛날 집 그대로였습니다. 부엌은 군불 때는 아궁이 위에 가마솥이 걸려 있고, 방문은 창호지를 바른 문,  옛날 마루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집 뒤로는 40평 남짓한 텃밭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장을 보지 않아도 텃밭에 가지, 오이, 열무, 참외며 호박, 고추, 옥수수, 고구마, 부추 따위를 심어 먹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남아 있는 어릴 적 시골생활이 손끝에서부터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골생활을 그만두어야했습니다.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반년을 조금 넘긴 시골생활을 거두고 다시 빡빡한 도시로 밀어 넣었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예전에 살던 일산으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마흔 살이 넘어 처음 작업실을 얻었습니다. 2001년 2월, 모 어린이 신문으로부터 자연그림을 연재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2주마다 신문에 그림을 싣고 <우리교육>에서 책으로 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손이 덜 미친 곳을 찾아서 그림을 그렸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 속에 있는 자연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림꼴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연필 흑백그림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생명들만 수채화물감으로 채색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만든 도시는 자연색을 갖지 못할뿐더러, 도시 속 생명들을 좀 더 잘 드러나 보이도록 그릴 생각에서였습니다.


 자연 본래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 일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속 자연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는 일도 아주 뜻있는 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좀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논과 밭을 갈아엎어 집을 짓고, 산을 파헤쳐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자리가 논이었는지 산이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사람들 눈에 맞게 다시 꾸밉니다. 그리고는 늘 ‘자연 친화적인 도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연을 닮기보다는 사람들이 만든 또 하나의 크나큰 조형물이 되고 맙니다.


 처음부터 잡초나 해충이 있었을까. 사람이 길러먹는 무밭에 민들레가 있으면 잡초고, 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해충입니다. 거꾸로 민들레꽃이 핀 들판에 무가 몇 포기 있다면 무가 잡초가 됩니다. 잡초니 해충이니 하는 것은 사람 기준입니다. 잡초든 해충이든 자연에서는 서로 갖는 몫이 있고, 서로 돕고 다투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살아갑니다.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필요해서 집을 짓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나무나 풀을 심습니다. 도시에 민들레나 엉겅퀴가 있으면 뽑아버립니다. 하지만 맨드라미나 백일홍이 있다면 뽑아버리지 않습니다. 맨드라미나 백일홍은 오래 전부터 사람이 꽃밭에 심어 길렀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민들레나 엉겅퀴는 들판에서 제 멋대로 자랐기 때문에 뽑아버립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맨드라미나 백일홍이 민들레나 엉겅퀴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 작업을 하면서 도시 속에서 푸대접받는 풀벌레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도시를 만들면서 몰아냈던 작은 생명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애써 심어놓은 나무나 화려한 꽃보다는 시멘트 틈바구니로 찾아와 꽃을 피운 들풀과 작은 들풀을 찾아온 벌레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2주마다 큰 그림 한 장씩 그려내야 하는 어려움도 컸지만 도시에서 새록새록 보이는 작은 생명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2000년 말미부터 2001년 초에 걸친 겨울은 보기 드물게 많은 눈이 왔습니다. 아이들 새 학기를 시작하는 3월 초에도 산에는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도시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채 쓸쓸했습니다. 썰렁한 도시 속에 무엇이 살아 있을까? 처음 도시 속 생명을 찾아 나설 때는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서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땅바닥으로 눈을 조금만 낮추고 들여다보면 작은 생명들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틈새로 흙만 있으면 풀이 뿌리를 내렸고 벌레들이 찾아왔습니다. 보도 불럭 틈새, 돌담 사이나 놀고 있는 빈터, 가로수 밑에 좁다란 흙에서 달맞이꽃, 망초, 꽃다지, 돌나물... 그리고 무당벌레며 네발나비를 비롯한 수많은 벌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따듯해지고 봄, 여름으로 갈수록 더 많은 생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도시 틈바구니에 숨어 있던 풀들이 키가 커지고 꽃을 피울수록 훨씬 눈에 잘 띄었습니다. 여름에는 너무 많아서 무엇을 그릴지가 걱정거리였습니다. 도시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저마다 아름답고 소중한데 뭘 그려야 할지? 어차피 학문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기에 가장 흔하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생명들을 그렸습니다.


 2001년은 가뭄이 심했습니다. 농촌에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물이 모자라서 농사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7월에 들어서야 장맛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작업실 옆에 건물을 짓지 않은 큰 빈터가 있었는데, 그 빈터에 빗물이 잦아들지 않고 고였습니다. 곧 물풀이 돋아나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청개구리들이 몇 날 며칠을 울어댔습니다. 소금쟁이가 날아들고 잠자리들이 짝짓기를 하고 물 속에 알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어린 청개구리들이 땅위로 기어올라 와글거리고 있었습니다. 황로와 백로도 날아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일산 새 도시는 논밭을 갈아엎고 만들었습니다. 빈터가 습지습성을 간직하고 있어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물이 생명을 부르고 생명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아주 널따란 호수공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죽은 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했습니다. 도시는 생태도로가 없고, 그저 자동찻길만 사방으로 나있는 것이 더욱 안쓰러웠습니다. 그렇게 많던 청개구리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합니다.


 2001년 12월로 작업을 마칠 때까지 200가지가 넘는 크고 작은 생명을 만났습니다. 반도 되지 않는 생명들을 그림에 담고 작업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자연이 살아야할 땅을 빼앗으며 집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자연은 늘 우리를 품으려하고 도시 구석구석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크나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굳이 내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시가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꽃밭에 좀 다른 꽃이 피었다고 뽑아버리고 몰아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제 몫을 다하며 살 수 있게 도우면서 살아야겠습니다.


 2004년 8월, 그날그날 도시 속 생명들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어 두었던 글을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펴내게 됐습니다. 3년이나 지나 글을 정리하느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처음 작업할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 곁에서 살고 있는 생명들에게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책을 보는 이와 함께 하고픈 마음입니다.

 

 <늦어도 괜찮아 막내황조롱이야>
 지난 2001년 늦은 봄,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를 작업 하면서 산본 새도시 아파트에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습니다.  18층 베란다 밖으로 있는 화분받침대를 꽉 메운 나뭇가지, 아이가 들어앉을 만큼 큰 둥지를 틀었습니다. 5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에서 둥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높디높은 건물 틈바구니에 어떻게 자리를 마련했을까 하는 궁금함과 함께 신비감마저 들었습니다.


 더욱 마음이 끌린 일은 이른 여름 새끼황조롱이 네 마리가 다 자라 둥지를 떠날 때였습니다. 먼저 알에서 깨어나 먼저 자란 세 마리 새끼황조롱이는 날아 둥지를 떠났는데, 한 마리만 날지를 못했습니다. 흔히 날짐승이나 길짐승이 약한 새끼를 버린다고 이야기 되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기야 다 자라서 날게 된 새끼를 버리는 것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성장이 늦은 새끼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날게끔 하는 황조롱이 부부를 보면서 새삼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날지 못하는 새끼에게 몇 차례 먹이를 물어다 주고, 앞 동 지붕 위에서 날아 보라고 애절하게 울어대고, 새끼가 있는 둥지로 날아와서 어미 날개로 새끼를 쓸어안고 가기도 하고....   날지 못하는 새끼는 물어다준 먹이를 아무 소리 없이 받아먹고, 둥지 위를 날개 푸덕거리며 맴돌고, 날갯짓도 해보고, 어미가 날아와 쓸어안을 때는 큰소리로 울어재끼며 애써 날갯짓을 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순간순간 일어나며 가슴을 아프게 하고 뭉클하게도 했습니다. 조금은 늦었지만, 날아가는 새끼황조롱이를 보면서 속으로 박수를 치고 이젠 똑같아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만 빨라도 자랑하고, 조금 늦으면 불안해하고 속상해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어릴 적 늦고 빠름과 상관없이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늘 가슴에 품어왔던 황조롱이 이야기를 일년 남짓한 작업과정으로 풀어보았습니다. 황조롱이 깃털을 제대로 그려보고파 서른 개에 가까운 무뎌진 펜촉을 갈아 끼우며 작업했지만 여전히 미숙함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서툴고 모자라지만, 내 속에 있는 황조롱이 몸짓들, 가슴 아프고 뭉클한 일들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튼튼하게 자라나 어미가 되서 새끼를 키우는 황조롱이를 그려봅니다.

 

5. 서식지 도감
 <도시 속 생명이야기>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점점 사람 발길이 잦아지면서 망가져가는 본래 자연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식지 도감>인데, 정태련 선생이 그린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사는 강>이 출간 되었습니다. 뒤이어 저는 <늪>을 3년이 넘게 취재하고 밑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채색할 날이 까마득히 멀지만 덜 망가진 모습을 보고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 좋아서 또 빠져 있습니다.

 

6. 몸으로 일한다는 것
 도감그림이든 그림책이든 자연을 가운데 두고 발로 뛰어 다니는 것이 내 작업의 바탕입니다. 자연을 대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을 보고 싶어 취재를 간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날씨, 계절 따위가 늘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조금 쌓이면 그때 한 마디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발로 뛴 것을 바탕으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자연에 숨어 있는 우리 어르신들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 내 작업의 뿌리인 듯싶습니다.


 도시화되고 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몸으로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자료검색을 한다고 컴퓨터에서 뒤져냅니다. 그러나 컴퓨터 안에서 뒤진 자료가 진짜인가를 판단하는 데는 실제로 보고 느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가끔 후배화가들이 엉뚱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가지고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발로 뛰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연을 내 몸 가까이하고 자연현상에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절실하고 창작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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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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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2006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2006년 2월 6일, 새벽부터 내린 눈이 아침이 밝아오고, 이른 10시가 넘을 때까지 내렸다. 가지각색이던 도시는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길거리를 다니는 차들은 벌벌 기는가 싶더니, 금세 찻길은 눈이 녹아 비온 뒤와 같은 차바퀴 소리를 내며 달렸다. 어디 나지막한 산에라도 가볼까! 한참을 망설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그냥 주저앉았다. 점심을 차려먹고 나서야 가까이 있는 호수공원에라도 나가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고 있는 나이 먹은 회화나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호수공원으로 갔다. 늘 그랬듯이 공원길은 아스팔트로 덮여있고, 잘 다듬어진 나무들만 있다. 넓은 호수에는 새 한 마리보이지 않는다. 날이 개이긴 했지만 해가 구름에 가렸다 나왔다 한다.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라면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을 담아낼 수 있는 분위기다. 쭉쭉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흐릿한 해가 보이고, 하얗게 얼어붙은 사이에 제트자로 녹은 호수 물에 비추는 나무 그림자....... 흉내 내어 몇 장 찍으며 걸었다. 눈이 서서히 녹는다.

 

눈 위로 먹이를 찾아 뛰어다닌 까치 발자국이 또렷하게 찍혀있다. 눈이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나무 위에 까치가 점잖게 앉아있다.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갖가지 모습으로 셔터를 누르게 한다. 뚝 잘린 나뭇가지 위에 딱새 수컷 한 마리가 꼬리를 까딱이며 앉아있다. 검은 얼굴에 회색 머리, 검은색에 흰점이 있는 날개, 발그레한 가슴색이 자꾸 눈길을 끈다. 눈이 녹으며 드러내는 나뭇가지와 땅은 새들을 바쁘게 한다. 먹이를 찾아 불이 나게 움직인다. 참새는 무리지어 나무 덤불에 숨었다가 먹이를 찾아 드러난 땅으로 내려앉는다. 어떤 참새는 사람 발자국을 쫓아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박새, 쇠박새도 두세 마리, 네댓 마리 무리지어 나무와 땅을 오가며 빠르게 움직인다.

 

호랑지빠귀로 보이는 녀석은 둘레 나무를 크게 돌며 먹이를 찾는다.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회화나무 앞에 다다랐다. 이미 잔가지에 눈은 녹고, 굵은 가지에만 눈이 남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를 귀하고 신성이 여겨, 회화나무를 심으면 집안에서 학자가 나오고, 관직에서 이름을 얻고 물러날 때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집 앞문에 세 그루를 심으면 잡귀가 가까이 오지 못하고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은 회화나무.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게 자란다는 회화나무. 호수공원에 있는 회화나무는 일산 새 도시가 생기고, 호수공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200년쯤 되었다 하니,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회화나무 그늘 밑에서 쉬어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함안 칠북면에 있는 회화나무는 500년쯤 살고 있다고 한다. 비록 몸이 늙어 수술을 받고 서 있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회화나무를 보면서 행복해 하고, 그늘 밑에서 쉬어갈지는 또 아무도 모를 일이다. 눈 내린 지금도 이 회화나무 앞에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며 뛰어놀고 있다. 나무가 나이가 들면서 제 모양을 바꿔 가듯이 아이들이 만드는 눈사람 모양도 바뀌는가보다.

 

대여섯 살 먹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와 함께 만든 눈사람은 토끼모양을 하고 있다. 눈사람이 녹고, 봄바람이 불면 회화나무는 어김없이 새싹을 내밀고, 꽃 피고,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회화나무 생각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박새며 참새 떼를 다시 만났다. 흐릿한 내 그림자가 또렷해져 뒤돌아보니 구름에 가렸던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환하게 비췄다.

 

뿌듯한 가슴으로 셔터를 눌렀다. 다시 한번 눌렀다. 셔터가 눌리지 않는다. 메모리카드가 고장 났다. 지금껏 찍은 사진이 날아갔다. 한참을 당황하고, 억울한 생각에 일손을 잡을 수 없었다. 억울한 생각이 가시면서 차근차근 되새김질을 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진에 목매달았던가? 세밀한 그림을 그리려니 정확한 자료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거꾸로 들여다보면 사진으로 담는다는 핑계로 순간순간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좀더 깊은 관찰을 해야 한다. 사람 실수든 기계 실수든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는 기계보다는, 좀 느리고 어눌해도 사람 머리에, 사람 가슴에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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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ap jerseys 2012.10.10 17: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할 경우 아무것도 표시 되지 않는다.

※ 이 글은 지난 2005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2005년 6월 9일


“삐잇삐잇삐잇” 조금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는 직박구리를 도시 길거리를 걷다 보면 자 주 만날 수 있다. 한 달 전쯤일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집 앞 잔디밭에 심어 놓은 산딸 나무 가지 위에앉아 있는 직박구리를 만났다. 돌이켜 보면 후회가 되고, 참 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간 사이에 직박구리가 산딸나무 가지에 벌써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어제(2005. 6. 8.) 마두도서관엘 가려고 아침 여덟 시에 집을 나서는데, 다른 때와는 다르게 여러 마리 소리가 났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직박구리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 위에 앉아 있었다. 나를 금방 눈치 챈 어미는 다 른 나뭇가지에 날아가 앉아 둘레를 살핀다. 미안하기도 하고 갈 길이 바빠 내일 다시 들여다볼 마음으로 먼발치서 보다가 뒤돌아서 왔다. 큰아이 수학여행 가는 날(2005. 6. 9.),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큰아이 점 심으로 김밥을 아이 엄마와 함께 말았다. 일곱 시 십 분쯤 큰아이를 먼저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아침밥을 먹었다. 어젯밤부터 내내 직박구리만 머릿 속에 있다. 내키지 않는 설거지를 하고 나니 아침 여덟 시 반. 카메라 가방 을 둘러메고 산딸나무 앞으로 갔다.

 

그런데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 소리도 나질 않는다. “너무 늦었나! 아침 시간이 지났나 보네. 그래도 또 어미가 오겠지.”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멀리서 둥지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유, 어제 왔으면 좋았을걸.” 동네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 왔다. “어제 저녁에 새끼 세 마리가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는데, 참 예뻤어. 그 런데 세 마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더라고. 난 날 수 있을지 알았지.

 

그것 참 이상해. 날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두 마리는 고양이가 먹어 버렸어. 그 런데 한 마리는 살았어. 내가 얼른 잡아서 저기 현관 지붕 위에 올려놨 어.” 옆에서 기웃거리며 듣고 있던 약국 아주머니가 말을 거든다. “에구, 그래서 어제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 댔구나.” 현관 지붕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새끼 한 마리가 있다. 혼자 담배꽁초 몇 개 옆에 가만히 있다. 옆에 몇 차례 눈 똥도 있다. 고개를 갸웃거릴 뿐 아 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는데 어미가 날아왔다. 나와 2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찌잇찌잇” 날카롭게 울어댄다.

 

얼른 물러섰다. 새끼 둘을 잃은 어미 마음이 어떨까? 물러선 뒤로도 직박구리 어미는 새끼 둘레에 있는 감나무, 베란다, 경비 실 지붕 위, 다시 현관 지붕 위로 날아가 앉아 날카롭게 울어 댔다. 벽에 숨어서 지켜봤다. 어미는 내가 새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새끼 옆으 로 날아와 앉는다. 한참을 옆에 있다가 벚나무로 날아갔다. 버찌 한 알을 따 물고는 둘레를 한동안 살피다 새끼 곁으로 날아왔다. 먹이를 주고는 곧 지붕 턱 위에 앉는다.

 

새끼는 어미가 앉아 있는 턱 위로 날아오르려고 몇 차례 퍼득여 보지만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어미는 새끼를 보지 않 으려는 것일까, 보기가 안쓰러워서일까? 먼 하늘을 쳐다보는 어미 눈이 구 슬퍼 보인다. 혼자 남은 새끼는 두 형제를 잃은 것을 아는지? 사람 무릎 높 이도 채 안 되는 지붕 턱 위에 앉아 있는 어미 곁으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직박구리 새끼가 안타깝다.

 

 왜 직박구리 어미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들을 데리고 둥지를 떠났을까? 고양이나 다른 동물에게 위협을 받았을까? 아니면 사람 눈이 무서웠을까? 어차피 목숨이라는 것이 큰 순환구조 안에 있어 죽고 사는 일을 어쩔 수 없 다 하더라도, 애절한 직박구리 새끼와 어미 몸짓이 눈에 밟힌다. 직박구리 새끼가 튼튼한 몸이 되어 날아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다른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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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작업일지 2007. 12. 11. 17:07 |

 이 글은 지난 2005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작은아이 초등학교 일학년 때 일입니다. 학교에서 수업으로 비석치기를 한 다고 납작한 돌멩이를 주워 오라고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집 둘레에서는 비석치기할 만한 돌멩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와 한 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 밑에서야 마땅한 돌멩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이런 돌이 아니래….” 같은 반 모든 아이들이 문방구에서 사각형으로 잘라 파는 나무토막을 사가 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업도 운동장에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책상을 한쪽으로 치우고, 교실바닥에서 놀이수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가 가져간 돌멩이로는 놀이를 할 수 없었겠지요. 속상해하는 아이를 달래면서 마음이 씁쓸하기도 하고, 어릴 적 시골에서 놀던 생각도 났습니다. “망치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 망치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 마을 어느 아이든 소리를 치면, 아무데서나 납작한 돌멩이 하나씩 들고 모 여들었습니다. 마당에 나뭇가지로 쓱쓱 줄을 긋고는 밥 먹을 시간도 잊은 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떠들면서 놀았습니다. 텔레비전이 나 컴퓨터가 없으면 심심해하는 지금 아이들과, 돌멩이나 나뭇가지가 놀잇 감 전부였던 우리네 어린시절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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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rmes Mini Constance handbags 2012.08.14 18:41 Address Modify/Delete Reply

    명이였는데잘따라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작업파일을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05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늦어진 가을 취재, 초겨울에 대승골을 가다. 어디를 다녀온다는 것이 힘이 들 때가 있다. 서로 앞에 있는 일들이 있어서 함께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10월부터 잡은 가을 산양 취재를 12월 17일에서야 설악산 대승골로 갔다. 여느 때와는 달리 박그림선생이 서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을 조금 벗어난 휴게소에서 만나 같이 갈 수 있었다. 


 

낮 12시 반쯤, 양수리를 조금 지나서 점심으로 콩나물국밥 한 그릇씩 먹고 쉬엄쉬엄 길을 갔다. 우리끼리 갈 때는 양평, 홍천을 거쳐서 인제를 지나 바로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홍천을 지나서 상남, 현리를 거쳐서 인제, 설악산으로 길을 에둘러 갔다. 현리를 지나 인제로 가는 길에 가리산 뒤를 바라볼 때쯤 게슴츠레 달이 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니 여유 있는 마음도 생기고, 새로운 길에서 보는 풍광도 즐겁다. 날이 어두워서 백담사입구에 다다랐다.

 

 절 공양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백담사입구에서 순두부백반 한 그릇씩 먹고 깜깜한 길을 따라 백담사에 올랐다. 너무 늦어서인지 숙박 일을 보는 보살이 없었다. 박그림선생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아내어 힘들게 잠자리를 마련했다. 따듯한 방구들이 몸을 녹인다. 박그림선생이 10월에 대승골을 조사하면서 찍은 사진을 구경 하다가 밤 10시쯤 잠이 들었다. 18일 새벽, 저마다 자주 잠을 깨는 눈치였다. “어어, 공양시간 끝났겠네.” 박그림선생 말에 벌떡 일어났지만 벌써 아침 7시다.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이미 공양시간이 끝났다. 하는 수없이 “그냥 올라가죠.” 했더니 “밥 안 먹으면 못 올라가요, 먹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어요.” 또 박그림선생이 애를 썼다. 맛 나는 절밥 한 그릇 얻어먹고 따듯한 물과 주먹밥도 챙길 수 있었다. 조금 늦은 아침 8시 반쯤 전나무 군락이 있는 대승골로 길을 나섰다. 백담사를 벗어나자 계곡물이 바깥쪽부터 얼어 들어가고 있다. 얼음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계곡물로 내려갔다. 그런데 얼음보다 좁다란 모래 위에 난 동물 발자국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닌 발자국이 줄줄이 나있다. 너구리와 수달 발자국이다. 모래가 꽁꽁 얼어서 밟아도 부서지지 않는다. 수달 발자국은 모래 위를 걷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종종종 걷는 앙증맞은 수달 모습이 그려진다. 다른 발자국을 따라서 올라갔더니 큰 바위 밑으로 시커멓게 말라붙은 수달 똥이 널려있다. 예전에 동강에서 보았던 마르지 않은 수달 똥이 생각났다. 금방 눈 똥을 보면 물고기 가시나 비늘 따위가 그대로 섞여 나오기 때문에 뭘 먹었는지 알 수 있다. 홍수 때 뿌리 채 뽑혀서 떠내려 온 나무 한 그루도 누워 있다. 뿌리에 조금 붙어있는 흙에 달맞이꽃이 뿌리를 내렸다. 


 

다시금 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계곡을 지날 때마다 돌에 고드름이 달려있다. 투명하다. 햇빛에 반짝인다. 자연은 저마다 다르고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자연을 느끼고 몸으로 받아들이려면 몸이 건강해야 하고 끊임없이 찾아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걷는 길이 포근하다. 겨울이라기보다는 늦가을 같다. 포삭포삭 걸어 지난번 피골 취재 때 먹을 물을 퍼 담았던 자리에 이르렀다. 피골은 앞 산등성이를 타고 올랐지만 이번에는 대승골을 가기 위해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낙엽이 쌓인 포근한 길이 이어졌다. 해발 650m쯤 지점에서 뜻밖에 똥이 보였다.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산양이 여기까지 내려와요.”(이 길은 휴식 년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올 수 없다.) 박그림선생 이야기를 들으며 똥을 살폈다. “아아, 어려워요 산양 똥보다는 작고 똥끝이 뾰족한걸 보면 노루 똥 같기도 하고....” 누구 똥인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똥 무더기가 계속 이어져 있다. 산양은 똥을 같은 자리에 무더기로 누는데 흩뿌리듯이 싸 놓은 것으로 보아서 노루 똥이라고 의심 섞인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박그림선생이 똥을 비닐봉지에 담아 서울대학교에 보내서 유전자 감식을 해본다고 했다. 산양은 똥을 같은 자리에 여러 번 무더기로 누고, 똥끝이 동글동글 하다. 그리고 똥 크기도 고르다고 한다. 그런데 노루는 똥을 흩뿌리듯이 누고, 산양 똥보다 조금 작고, 똥 크기도 크고 작은 차이가 많다고 한다. 위로 올라가면서 한동안 똥 무더기가 이어졌다. 눈이 녹으면서 만든 고드름이 바위마다 달려있다. 금방 눈 것 같은 똥이 보였다. 아직 점액이 마르지 않아서 반들반들하고 겉이 끈적끈적하다. 


 

그런데 이 똥은 좀더 크고 눌린 듯이 똥에 각이 져있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다. 누구 똥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유전자 감식을 하려고 다시 똥을 담았다. 그리고 위를 향해 걸었다. 허리춤까지 오는 조릿대 군락을 지나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른다. 바위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햇살이 따듯하다. 얼마 걷지 않아서 산양이 앉았다 간 자리를 만났다. 낙엽이 납작하게 눌려있다. 그 옆에는 오래된 똥 무더기가 있다. 조금 더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인 작은 산마루가 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오래된 산양 똥 무더기가 있다. 


 

똥색이 허옇게 바뀌고 있지만 밑에서 본 똥과는 느낌이 다르다. 큼직하고 타원형으로 둥글둥글하다. 묵직해 보인다. 위로 올라가면서 멧돼지가 먹을거리를 찾으려고 파 놓은 흙구덩이가 많이 보인다. 멧돼지 힘을 실감케 한다. 참호만큼 큰 것도 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바위벽을 지나 해발 1,000m 능선에서 산양자리를 만났다. 이곳도 시야가 탁 트였다. 사방을 경계하기가 좋다. 찬바람이 뺨을 때려 얼굴이 얼얼하다. 늙어 쓰러진 나무가 부서지고 있다. “자연 안에 산 것만 있어야 합니까!” 밑에서 죽었다고 베어버린 나무등걸을 보면서 박그림선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그저 제 목숨 다하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다시 태어날 다른 목숨 밑거름이 되면 그만인 것을. 왜 사람들은 자연을 간섭하고 다스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무줄기가 하얀 사스래나무(거제수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꽤 높이 올라온 모양이다. 사스래나무나 거제수나무는 나무껍질이 하얀색이고 종이같이 얇게 벗겨진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물학자 박인주선생은 이 나무껍질에 연애편지를 썼다고 한다. 컴퓨터로 편지 보내는 지금을 생각하면 여유 있고 낭만이 있다고 여겨진다. 


 

예전에 경주에 갔을 때 이 나무껍질에 글과 그림을 그린 유물을 전시한 것을 본 것도 같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능선 밑으로 멧돼지가 진흙목욕을 한 흔적을 만났다. 멧돼지는 질퍽질퍽한 진흙에 목욕을 한다. 도시 아낙네 같이 피부가 고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나 해충을 털어내려고 한다고 한다. 혹 피부가 고와지는 것과 관계가 있으려나? “저기를 봐요.” 박그림선생이 옆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킨다. 


 

멧돼지가 진흙에 뒹굴고 소나무에 비빈 흔적이 있다. 소나무 밑동이 달아서 맨들맨들하고 진흙이 묻어있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소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주던 생각이 난다. 깊게 파고든 진드기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멧돼지 거친 몸짓이 느껴진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갔다. 커다란 전나무 밑으로 산양똥밭이다. 뒤로는 가파른 언덕이 있고 앞은 툭 트였다. 주변으로는 조릿대가 많다. 


 

조릿대 이파리를 뜯어먹고 남긴 산양 이빨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식물을 먹고사는 산양은 겨울에는 먹을거리가 드물다. 그래서 조릿대 이파리나 침엽수 이파리를 뜯어먹으면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똥 색깔은 여름 똥에 비해서 갈색 빛을 띤다고 한다. 낙엽을 들쳐보니 온통 산양 똥이 쌓여있다. 여기저기 똥을 들여다보다가 쪼그리고 앉아 앞을 내다본다.


 

 앞에 펼쳐진 풍광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전혀 사람손이 닿지 않은 자연그대로 나무모양에 푸르스름한 먼 산색과 검푸른 전나무 색, 하얀 사스래나무(거제수나무?) 줄기색깔이 어울려 가슴을 흔든다. 가끔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너무 가슴 벅찬 자연모습을 보면 주눅이 들고 무지렁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돌아서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요. 

 

조금 더 올라가서 내려갑시다.” 박그림선생이 다시 앞장서 올라간다. 얼마 걷지 않아서 오래된 산양 영역표시와 능선에 있는 산양자리 한 군데를 더 보고 내려가는 길을 잡았다. 발길을 틀려고 하는데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가 보인다. 그냥 지나기가 아쉬워 먼저 내려가시라 하고 겨우살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뒤따라 내려가니 벌써 산양자리를 빌어 점심상을 벌렸다. 늦은 2시쯤, 늙어 쓰러진 나무 옆에 있는 산양자리에서 주먹밥을 먹었다. 


 

아늑한 자리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고 바람 한점 없다. 햇살이 따듯하다. 대승골 산양자리는 가는골이나 피골하고는 다르다. 가는골이나 피골 산양자리는 큰 바위를 등지고 앞이 절벽이면서 툭 트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대승골은 능선을 타고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세 군데가 가지고 있는 같은 점이 있다. 시야가 탁 트여서 맹수를 경계하기에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점심을 먹고 내려가기에 앞서 앉았던 자리를 살폈다. 많은 똥 무더기와 더불어 오래되지 않은 영역표시가 있다. 

 

나무 굵기는 10mm가 조금 넘을 정도고 키는 허리춤뿐이 오지 않는 아주 작은 나무에 영역표시를 했다. “이야, 요기다 어떻게 뿔로 긁었을까?” 다함께 같은 말을 했다. 전나무 숲을 헤치며 내려오다가 똥 무더기 몇 군데를 더 보았다. 내려오면서 점점 바위가 많아졌다. 커다란 전나무와 바위를 등진 산양자리도 만났다. 어른 두 아름은 넘을만한 전나무도 안아 보면서 바삐 내려왔다. 

 

날이 저물어 가기도 했거니와 오늘 밤에 정선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바삐 내려오다 집채보다 큰 바위를 만났다. 한숨 돌리면서 주위를 살피는데 박그림선생이 바위를 돌아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바위를 돌아가 보니 바위가 지붕모양을 하고 있다. 바위지붕 밑으로 산양 똥이 널려있다. 아주 오래되어서 허옇게 바뀐 똥부터 눈지 얼마 되지 않은 갈색을 띠는 겨울 똥까지 있다. 


 

산양이 있던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밖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오래 머물렀다. 박그림선생은 이 자리에 무인카메라를 설치 할 거라고 한다. 해가 떨어지고 있다. 숲이 침침해 진다. “이제 한 곳만 더 보고 쭉 내려갑시다.” 말과 함께 박그림선생이 빠른 걸음으로 다시 앞장선다. 두리번거리면서 내려오다 언덕 같은 바위를 만났다. 널따란 바위 위가 산양 똥으로 뒤덮였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부지런히 내려오다 한자리에 영역표시가 세 개 있는 곳을 만났다. 얼마 되지 않아서 껍질이 벗겨진 나무속살이 아직 하얗다. 10월쯤 짝짓기 철에 영역표시를 한 걸 거라고 박그림선생이 미루어 짐작한다. 조릿대 군락을 빠져나오면서 약초꾼들이 남긴 잠자리 흔적을 보았다. 옆에 지성 드리는 제단이 함께 있다. 박그림선생은 등산로로 접어들면서 줄곧 사람들이 산에 오르면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표시리본을 떼어냈다. 자연에 사람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여름에 왕관모양으로 활짝 벌려있던 관중이 겨울을 맞아 방석모양으로 납작 내려앉았다. 산이 새까매지고 하늘에 달이 또렷이 보이는 저녁 여섯시가 다 되어서 백담사로 다시 돌아왔다. 산을 내려와서도 끊임없이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 산을 올라가면서 까막딱따구리를 만났다. 가만히 쳐다보다가 사진을 찍지 못했다. 행동이 느린 탓이기도 하고 날아가 버릴까봐 너무 조심조심한 탓도 있다. 

 

그리고 사서 처음 써보는 80~400mm 망원 줌렌즈를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 이기도 하다. 까막딱따구리는 몸집이 커서인지 나무 쪼는 소리가 오색딱따구리와는 달랐다. 오색딱따구리는 마치 작은북을 빠르게 치듯이 또르르르르르르.... 또르르르르소리가 난다. 그런데 까막딱따구리는 목수가 까뀌로 나무를 쪼는 듯 통 통 통 통 통 통...소리를 낸다. 백담사입구에서 급하게 황태구이백반을 먹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정선으로 내달렸다. 


 

1998년 늦가을, 조양강(동강) 줄기에 있는 가수리로 돌너와집을 취재 하려고 갔던 적이 있다. 상평에서 신동으로 이어지는 조양강 줄기가 맑은 물과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뼝대(돌 절벽을 그 지역에서는 뼝대라고 부른다.)가 너무 좋아서 그 뒤로도 두 번을 더 갔다. 도시생활을 모두 접고 들어가 살 생각을 했을 정도니 오죽했을까. 19일 아침, 어제 산행 피로가 아직 덜 풀린 꾸덕꾸덕한 몸으로 아침밥을 먹자마자 정선에서 가리왕산입구를 지나 바로 상평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앞을 막았다. 동강댐 공사가 취소된 뒤로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 됐기 때문에 1,500씩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뭘 하려고 들어 가냐고 다시 묻기에 가수리 취재를 간다고 했더니 그냥 들여보내준다. 들어서면서 이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좁고 울퉁불퉁했던 흙길이 2차로로 넓이고 시멘트 포장이 돼 있다. 멀리 이어지는 시멘트 제방도 보인다. 


 

안쪽도 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수리까지는 가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가다가 비오리 몇 마리를 만났다. 이전 기분을 잠시 잊고 비오리에게 눈이 쏠렸다. 날렵한 부리에 깃털이 바람에 날리듯이 댕기 깃을 가진 암놈, 반짝반짝 검은 빛을 띤 초록머리를 가진 수놈이 물살을 가르며 다니는 모습이 평화롭다.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옆에서 좀 작은 녀석들이 움직인다. 논병아리다. 


 

이리저리 맴돌다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친다. 비오리, 논병아리 둘 다 잠수성 조류다.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 따위를 잡아먹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둥오리나 고니는 수면성 조류다. 이 녀석들은 머리만 물속에 넣고 꽁지는 물 밖으로 내밀고 먹이를 잡는다. 눈을 돌리니 다시 넓어진 시멘트길이 보인다. 일단 가보자. 들어가면서 예상했던 대로 일들이 벌어졌다. 예전에 있던 낮은 흙집들은 헐리고 팬션이며 큼직큼직한 양옥들이 들어섰다. 길을 넓히면서 시멘트제방을 쌓고 다리를 놓았다. 


 

강을 건너던 배는 다 없어졌다. 가수리는 더했다. 가수분교장 앞에 강을 메워 길을 넓히고 다리를 놓았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길을 넓히는 공사를 하고 있다. 윙윙거리며 도로공사 차가 차선을 긋고 있다. 시멘트 포장 위에 팔뚝만한 가로수를 심었다. 다 깎아내고, 망쳐놓고, 가로수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개발이다. 무지막지해 보인다. 


 

개발을 꼭 해야 한다면 전체 풍광을 고려해서 덜 해치고 어우러지는 모양으로 해야 한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비오리와 논병아리에 마음이 끌려 그냥 돌아 나왔다. 땅, 땅위에 세워 놓은 옥수수 대, 물, 뼝대는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헐고, 망가뜨린다. 나오면서 비오리, 논병아리를 다시보고 청둥오리 한 쌍도 보았다. 그런데 평화로워 보이지 않고 쓸쓸해 보인다. 


 

사람들 개발에 밀려나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상평입구에 다 나와서 허물어져가는 흙집을 보았다. 흙이 떨어져 집을 진 재료들이 드러나 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담을 옥수수 대로 엮고 겉을 흙으로 발랐다. 이처럼 우리조상은 사는 지역에서 가장 많고 구하기 쉬운 자연재료로 집을 지었다. 나무가 많은 지방에서는 귀틀집을 짓고 너와나 굴피로 지붕을 얹었다. 돌이 많은 지방에서는 돌로 집을 짓고, 갈대가 많은 지방에서는 갈대로 지붕을 얹었다. 


 

그래서 지방마다 집모양이나 재료가 달라서 지방 특색을 가졌다. 그리고 집을 자연재료로 지었기 때문에 제 목숨 다하면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요즘은 어느 지방이나 똑 같다. 아파트를 짓고 도시와 같은 양옥을 짓는다. 그리고 집을 허물면 건물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온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삶이 우리 미래를 보장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찹찹한 마음, 가슴 설레게 한 새들을 가슴에 안고 길을 달리고 달려 밤 10시에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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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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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holesale Jerseys 2012.06.13 17:1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번역을 소개만 하고 잠수탔는데 -_-ㅋ 소개글 이후로 개인적으로 좀 바빠고, 최근 한달간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

  2. Ysl handbags 2012.08.14 18:41 Address Modify/Delete Reply

    명이였는데잘따라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작업파일을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글은 지난 2005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백담사에서 가는골로 가는 길 길을 떠나는 새벽, 눈을 뜨지만 뒹굴뒹굴한다. 왠지 걱정이 된다. 지난번 피골 답사 때 오랜만에 산에 오르면서 몸이 힘들었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그래도 피골 생각을 뒤로 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늦은 네 시쯤 백담사 입구에 이르렀고, 버스를 타고 백담사 앞에 다다르니 만나기로 약속한 박그림선생이 버스 안에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궁궐 같은 백담사에 방 한 칸을 얻고 전두환이 어떠니 주절주절 이야기 하다 저녁 여섯 시에 절밥 한 끼 얻어먹고 방에 들었다. 모기가 들까 걱정이 되어 불도 켜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일정과 박그림선생 지나온 이야기, 점 점 점. 도시와 다르게 산골은 자연 시간대로 흘렀다. 해가 지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오랜만에 아주 이른 저녁 일곱 시 반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 뒤척이다 가물가물 잠이 들 때쯤 솨아~ 소리가 들렸다.

 

그저 바람 소리려니 하고 잠이 들었다. 헌데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렸다. 밤 열 시쯤 덜커덕 문 여는 소리에 “비 오지요!” 했더니. 김 팀장이 “비와요!”모두 일어나 앞마루로 나와 앉았다. 빗소리 들으며 내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희미한 불빛에 대웅전 단청이 보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단청이 하늘에 떠있다. 사진기를 꺼내어 셔터를 눌러 보지만 신통치 않다. 밤 열 한 시나 되었을까. “도시에서는 이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네.” 마치 산골에 익숙해 진 듯 키득거리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새벽 다섯 시, 눈을 뜨니 날은 개어 있었다. 새벽 공기는 싸늘하다.


씻고 난 뒤 물기 마르지 않은 얼굴이 시리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새벽안개에 쌓인 백담사 주변을 사진으로 스케치 했다. 여섯 시에 아침공양을 하고, 지난밤 내린 비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아침 일곱 시 반, 여덟 시간 산행 계획을 잡고 가는골로 향했다. 촉촉이 젖어있는 길, 아직 물기 마르지 않은 풀과 나무,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지난밤 걱정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얼마 걷지 않아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물총새를 만났다.

 

 물끄러미 쳐다보다 망원렌즈가 없으니 사진 찍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계곡을 따라 어렵지 않은 길을 걸었다. 산등성이 오르기를 앞두고 마실 물로 계곡물을 물병에 담았다.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박그림선생 말 한마디가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했다. 얼마 걷지 않아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만났다. 좁지만 흐트러지지 않은 길이 나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매 한 가지다. 힘을 아끼려고 다니기 쉬운 길을 고른다. 짐승 길을 따라 올라가다 산개구리를 만났다. 아직 어린 산개구리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박그림선생이 부른다. “여기 와 봐요 큰 녀석이 있네.” 아주 큰 산개구리가 눈만 껌뻑일 뿐 꼼짝 않고 있다.

 

생명체들은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 살아가지만, 이 녀석들은 산 속에서 어떻게 먹고 살아 가는지 궁금해진다. 가을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지난밤 비가 와서 그럴까? 작은 버섯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버섯 가운데 외피가 별 모양으로 갈라지고 둥근 구슬 하나 올려놓은 듯한 테두리방귀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생김새가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게 됐다. 얼마쯤 걸었을까, 산양 똥을 볼 수 있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에 산양 똥 무더기가 있다. 똥 가운데 좀 다른 똥이 섞여있다. 동글동글 떨어지지 않고 뭉쳐있다. 여름에 묽게 싼 산양 똥이라고 박그림선생이 일러준다.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다시 한 번 박그림선생 말이 들리고, 아주 가파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꼭 필요한 말 아니면 말 하지 말고, 발자국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산양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박그림선생이 귀띔해 주면서 이 지역에서 산양과 마주쳤던 이야기를 해 줬다. 숨죽이며 가파른 산길을 걸었다. 혹시 산양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가슴을 꽉 채웠다. 힘들지 않게 걷고 또 걸었다. 산양이 다니는 길이 보였다. 왼쪽은 낭떠러지, 오른쪽은 큰 바위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이 나있다. 길가 나무에는 얼마 지나지 않은 영역표시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조심조심 휘어진 산양 길을 따라 갔다. 길은 더 이상 없었다.

 

바위 낭떠러지가 앞에 있었다. 바위 낭떠러지엔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있다. 산양은 바위 절벽을 타고 건너편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산양이 다니는 길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따라 갈 수가 없다. 그 길을 포기하고 오른쪽 바위벽을 기어올랐다. 가느다란 나무에 몸을 맡기며 기어올랐다. 발밑에는 바위채송화 꽃이 시들어 가고 있다. 가파른 바위를 기어오르고 좁은 바윗길을 따라가서 산양이 머무는 자리를 만났다. 작고 예쁜 자리다. 그저 한 마리나 앉아 쉴 수 있을 만한 자리다.

 

영역표시와 함께 조금 시간이 지난 똥이 쌓여있다. 그 자리를 지나 위로 열 댓 걸음을 오르니 큰 자리가 또 있다. 뒤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바위 절벽, 앞은 툭 트인 전망, 전형적인 산양자리다. 이 자리엔 눈지 오래 되어서 하얗게 변해가는 똥부터 눈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빛을 띄는 똥까지 있다. 큰 발자국도 있다. 잠시 앉아 쉬는 동안 산양 기분을 느꼈다. 뒤로는 큰 바위가 감싸고 앞으로는 넓게 트인 풍광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맨 밑으로 처음 오르기 시작한 계곡 줄기가 보이고, 갖가지 나무, 구절초, 옆에 핀 당귀들이 욕심을 버리고 순박해지라고 일러준다.

 

산양이 다니는 좁은 낭떠러지 길을 가고 바위를 기어올랐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본다. 앞산에 바위 절벽들이 보인다. “저기 보이는 바위에는 다 산양 흔적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박그림선생이 일러준다. 


절벽 아래는 바람에 누운 자작나무 흰 나무줄기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숨 돌리고 아주 큰 바위를 돌아서 올랐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길고 넓게 누워있다. 바위 앞에 산양이 누워 쉬던 자리가 있다. 흙에 몸 부빈 흔적이 남아있다. 지난번 박그림선생은 여기에서 산양과 마주쳤다고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산양 흔적이 보이면 막 들어가서 헤집어 놓는데, 그러면 우리가 조사를 할 수가 없어요. 주변을 먼저 살피고 한 쪽에서부터 천천히 살펴들어 가야 합니다.” 

박그림선생 말에 따라 천천히 발밑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큰 바위 앞으로 구절초와 산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었다. 바위떡풀이 바위 여기저기에 붙어서 꽃을 피웠다. 앞에 가는 나무에는 오래 된 영역표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영역표시가 여러 개 있다. 큰 바위 밑으로 많은 산양 흔적들이 있다.

 

아마도 여러 마리가 모여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바위 밑으로 여러 무더기 똥이 있다. 한 곳은 산양 똥을 누가 퍼다 모아 놓은 듯이 쌓여 있다. 바위 앞으로는 산양 발자국이 쭉 늘어서 있다. 어린 산양들이 무리지어 지난 간 자국이다. 젖은 흙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린 산양들 숨결이 들리는 듯 하다. 산양 발자국 방향을 따라 언덕 위에 오르니 또 다른 똥 무더기가 있다. 여기에도 동글동글 검은 콩알 같은 똥과 여름에 묽게 싼 산양 똥이 섞여있다. 왜, 산양은 이렇게 험한 곳을 찾아 살아야 할까.


아마도 종족이 살아남기 위한 생활방식이 아닐까 싶다. 산양은 작은 뿔 두 개뿐, 맹수 공격을 막을만한 뾰족한 무기나 힘이 없다. 도망을 가야한다. 맹수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좁은 낭떠러지 길이나 험한 바위 절벽으로 도망을 가야한다. 우리가 보는 절경과는 다르게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보금자리도 뒤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막고, 앞은 낭떠러지여서 맹수들이 쉽게 다가 설 수 없는 곳을 택한다. 지금은 맹수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양을 해치는 적으로 사람이 남아 있다.


산양은 맹수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큰 바위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본 뒤 점심으로 주먹밥을 꺼냈다. 별 것 넣지 않고 참기름에 깨 몇 알 넣어 둥그렇게 뭉친 주먹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되었다. 넋을 잃고 주먹밥을 먹는데 온 몸이 근질 거렸다.

 

사진 찍는데 정신 팔려서 모기에 물린 자국이 부어올랐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치 헬리콥터 공습처럼 보였다.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밥을 먹었다. 그래도 이미 온 몸에 모기 바늘구멍이 났다. 밥을 먹은 뒤 잠시 모기 쫓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가 모기에 쫓겨 아래쪽으로 내려 왔다. 내려오는 길에 원시림을 보았다. 여기저기 늙어 쓰러진 나무, 쓰러진 나무에 파란 이끼와 갖가지 버섯이 피어나고 있다. 바위엔 파란 이끼가 끼고, 바닥엔 관중이 무리지어 자라고, 하늘로는 다래덩굴이 나무를 휘감으며 얽혀있다. 흙은 부엽토가 쌓여 발이 푹푹 빠진다. 이 것이 사람 간섭 받지 않은 자연 그대로 숲이 구나 싶었다. 정리 되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투고, 서로 도우며 제 모습을 찾아 살아가는 숲이 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는 짐승들 눈치를 보며 다래덩굴을 흔들어 다래 몇 알을 입에 넣었다.

 

 달고 상큼한 맛이 온 몸에 퍼진다. 산길을 거의 내려와 낮게 고인 계곡물에 다다랐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과 한 알 꺼내어 나누어 먹는데 물이 살짝 움직였다. 가만가만 다가가보니 물두꺼비 한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둘레를 살펴보니 한 쌍이 아니다. 여러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물두꺼비는 짝짓기를 한 채로 겨울잠을 자는데 벌써 겨울잠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가 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쉬는데 도롱뇽 한 마리가 돌 틈으로 꼬물꼬물 기어간다. 꼬리치레도롱뇽이다. 눈이 툭 불거지고 꼬리가 몸보다 긴 꼬리치레도롱뇽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물을 보았다. 작은 물고기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어린 꼬리치레도롱뇽이었다. 몇 마리 어린 꼬리치레도롱뇽이 꼬리를 씰룩거리며 물속을 헤집고 다닌다.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올랐다.

살아 있는 물,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자연이 살아있다. 뭔가 희망이 보였다. 구석구석 살아있는 자연이 우리를 살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물을 등지고 한 시간쯤 걸어 내려와 늦은 네 시쯤 다시 백담사에 이르렀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사뿐사뿐했다.

 

산양 흔적을 비롯한 작은 생명들이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전두환이 속죄한다며 머물렀던 백담사, 그 뒤로 많은 건물을 지어 늘렸다. 우리는 까닭 없는 많은 목숨을 앗아 간 전두환을 미워하고, 몹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도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사람이 편하자고 개발을 하면서 많은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 작은 생명을 사람 목숨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자연 안에서 생명은 너나할 것 없이 똑 같은 가치를 가진다. 작은 생명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다. 지금도 편한데 얼마나 더 편해져야 사람 욕심이 멈출 수 있을까. 다 망가트려 놓고 복원한다며 호들갑 떠느니 지금 있는 것만이라도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개발을 많이하고 부유한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 옛 어른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삶을 배워야겠다. 함께 사는 길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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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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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holesale jerseys 2012.06.13 17:1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나선 남자배구 대표팀이 벼랑 끝에 몰렸다. 박기원 감독이 이끄는 대표... 일본과 대결한다. 한일전에서마저 ..~ ^ - ^

  2. cheap jerseys 2012.07.03 17:42 Address Modify/Delete Reply

    광고위치가 아주 자연스럽고 좋네요~ 저도 한번 시도해봐야 되겠습니다.....^^

  3. hermes Mini Constance handbags 2012.08.14 18:41 Address Modify/Delete Reply

    명이였는데잘따라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작업파일을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