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2005년에 우리교육 출판사에 연재했던 생태세밀화 작업일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2005년 6월 9일 “삐잇삐잇삐잇” 조금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는 직박구리를
도시 길거리를 걷다 보면 자 주 만날 수 있다. 한 달 전쯤일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집 앞 잔디밭에 심어 놓은 산딸 나무 가지 위에앉아
있는 직박구리를 만났다. 돌이켜 보면 후회가 되고, 참 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간 사이에
직박구리가 산딸나무 가지에 벌써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어제(2005. 6. 8.) 마두도서관엘 가려고 아침 여덟
시에 집을 나서는데, 다른 때와는 다르게 여러 마리 소리가 났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직박구리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 위에 앉아 있었다. 나를
금방 눈치 챈 어미는 다 른 나뭇가지에 날아가 앉아 둘레를 살핀다. 미안하기도 하고 갈 길이 바빠 내일 다시 들여다볼 마음으로 먼발치서 보다가
뒤돌아서 왔다. 큰아이 수학여행 가는 날(2005. 6. 9.),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큰아이 점 심으로 김밥을 아이 엄마와 함께 말았다.
일곱 시 십 분쯤 큰아이를 먼저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아침밥을 먹었다. 어젯밤부터 내내 직박구리만 머릿 속에 있다. 내키지 않는 설거지를 하고
나니 아침 여덟 시 반. 카메라 가방 을 둘러메고 산딸나무 앞으로 갔다. 그런데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 소리도 나질 않는다. “너무
늦었나! 아침 시간이 지났나 보네. 그래도 또 어미가 오겠지.”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멀리서 둥지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유, 어제
왔으면 좋았을걸.” 동네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 왔다. “어제 저녁에 새끼 세 마리가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는데, 참 예뻤어. 그 런데 세 마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더라고. 난 날 수 있을지 알았지. 그것 참 이상해. 날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두 마리는
고양이가 먹어 버렸어. 그 런데 한 마리는 살았어. 내가 얼른 잡아서 저기 현관 지붕 위에 올려놨 어.” 옆에서 기웃거리며 듣고 있던 약국
아주머니가 말을 거든다. “에구, 그래서 어제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 댔구나.” 현관 지붕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새끼 한 마리가 있다. 혼자
담배꽁초 몇 개 옆에 가만히 있다. 옆에 몇 차례 눈 똥도 있다. 고개를 갸웃거릴 뿐 아 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는데
어미가 날아왔다. 나와 2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찌잇찌잇” 날카롭게 울어댄다. 얼른 물러섰다. 새끼 둘을 잃은 어미 마음이 어떨까? 물러선
뒤로도 직박구리 어미는 새끼 둘레에 있는 감나무, 베란다, 경비 실 지붕 위, 다시 현관 지붕 위로 날아가 앉아 날카롭게 울어 댔다. 벽에
숨어서 지켜봤다. 어미는 내가 새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새끼 옆으 로 날아와 앉는다. 한참을 옆에 있다가 벚나무로
날아갔다. 버찌 한 알을 따 물고는 둘레를 한동안 살피다 새끼 곁으로 날아왔다. 먹이를 주고는 곧 지붕 턱 위에 앉는다. 새끼는 어미가 앉아 있는 턱 위로 날아오르려고 몇 차례
퍼득여 보지만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어미는 새끼를 보지 않 으려는 것일까, 보기가 안쓰러워서일까? 먼 하늘을 쳐다보는 어미 눈이 구
슬퍼 보인다. 혼자 남은 새끼는 두 형제를 잃은 것을 아는지? 사람 무릎 높 이도 채 안 되는 지붕 턱 위에 앉아 있는 어미 곁으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직박구리 새끼가 안타깝다. 왜 직박구리 어미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들을 데리고
둥지를 떠났을까? 고양이나 다른 동물에게 위협을 받았을까? 아니면 사람 눈이 무서웠을까? 어차피 목숨이라는 것이 큰 순환구조 안에 있어 죽고
사는 일을 어쩔 수 없 다 하더라도, 애절한 직박구리 새끼와 어미 몸짓이 눈에 밟힌다. 직박구리 새끼가 튼튼한 몸이 되어 날아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다른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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