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단풍 들다 얼어붙어 빛깔을 잃었다.
몸을 움츠리게 하는 바람이 빛바랜 이파리를 떨군다.
시간이 가는 낙엽이 아쉬운지, 바래는 빛깔이 우울한지?
거의 매일 동 틀 무렵이면 알몸을 드러내는 나무를 본다.
집 울타리 잣나무에 곡선이 납작 붙어있다.
어두운 빛이 꿈틀꿈틀, 번뜩번뜩, 힘이 느껴진다.
나무 껍데기? 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 가만히 있다.
보기 드문 구렁이, 2m쯤 되는 아주 커다란 구렁이다.
구렁이가 크다지만 이만큼 큰 구렁이는 처음이다.
해바라기하는 걸까? 쉬는 걸까? 알 수 없다.
한참 뒤, 머리부터 천천히 조금씩 몸을 비틀었다.
잣나무 옆 철망울타리로 머리를 뻗었다.
그러고는 울타리 위에 사뿐히 앉았다.
어릴 적 기억이 났다. 구렁이는 집에서 같이 살았다.
부엌 벽에 있던 쥐구멍으로 구렁이가 들락거렸다.
초가지붕 위에서 커다란 구렁이가 해바라기를 했다.
그래도 구렁이가 집을 지켜 준다고 잡지 않았다.
우리네 어릴 적 이야기가 신화나 설화, 민담만은 아니다.
지금 구렁이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곁에 있던 구렁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저 몸에 좋다고 구렁이를 마구 잡은 잘못을 후회하고는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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