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산양 지킴이를 하는 박그림 선생과 산양 흔적을 찾아 몇 차례 설악산에 들었다. 설악산 가는골을 가려고
백담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산골은 자연 시간대로 흘렀다. 해가 지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오랜만에 아주 이른 저녁 일곱 시 반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뒤척이다 가물가물 잠이 들 때쯤 솨아~ 소리가 들렸다.
앞마루로 나와 빗소리 들으며 내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희미한 불빛에 대웅전 단청이 보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단청이 하늘에 떠 있다. 밤 열 한 시나 되었을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산양 똥을 볼 수 있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에 산양 똥 무더기가 있다. 똥 가운데 좀 다른 똥이 섞여있다. 동글동글 떨어지지 않고 뭉쳐있다. 여름에 묽게 싼 산양 똥이라고 박그림 선생이 일러준다. 아주 가파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지금부터는 꼭 필요한 말 아니면 말하지 말고, 발자국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산양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 박그림 선생이 귀띔해 주면서 이 지역에서 산양과 마주쳤던 이야기를 해 줬다. 숨죽이며 가파른 산길을 걸었다. 혹시 산양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가슴을 꽉 채웠다.
힘들지 않게 걷고 또 걸었다. 산양이 다니는 길이 보였다. 왼쪽은 낭떠러지, 오른쪽은 큰 바위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이 나있다. 길가 나무에는 얼마 지나지 않은 영역표시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산양은 뿔로 나무 껍데기를 긁어 자기 영역표시를 한다. 조심조심 휘어진 산양 길을 따라 갔다. 길은 더 이상 없었다. 바위 낭떠러지가 앞에 있었다. 바위 낭떠러지엔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있다. 산양은 바위 절벽을 타고 건너편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산양이 다니는 길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따라 갈 수가 없다. 그 길을 포기하고 오른쪽 바위벽을 기어올랐다. 가느다란 나무에 몸을 맡기며 기어올랐다. 발밑에는 바위채송화 꽃이 시들어 가고 있다.
가파른 바위를 기어오르고 좁은 바윗길을 따라가서 산양이 머무는 자리를 만났다. 작고 예쁜 자리다. 그저 한 마리나 앉아 쉴 수 있을 만한 자리다. 영역표시와 함께 조금 시간이 지난 똥이 쌓여 있다. 그 자리를 지나 위로 열 댓 걸음을 오르니 큰 자리가 또 있다. 뒤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바위 절벽, 앞은 툭 트인 전망, 전형적인 산양 자리다. 이 자리엔 눈지 오래 되어서 하얗게 변해가는 똥부터 눈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빛을 띄는 똥까지 있다. 발자국도 있다. 잠시 앉아 쉬는 동안 산양 기분을 느꼈다. 뒤로는 큰 바위가 감싸고 앞으로는 넓게 트인 풍광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맨 밑으로 처음 오르기 시작한 계곡 줄기가 보이고, 갖가지 나무, 구절초, 옆에 핀 당귀들이 욕심을 버리고 순박해지라고 일러준다. 산양이 다니는 좁은 낭떠러지 길을 가고 바위를 기어올랐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본다. 앞산에 바위 절벽들이 보인다. ‘저기 보이는 바위에는 다 산양 흔적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박그림 선생이 일러준다. 절벽 아래는 바람에 누운 자작나무 흰 나무줄기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숨 돌리고 아주 큰 바위를 돌아서 올랐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길고 넓게 누워 있다. 바위 앞에 산양이 누워 쉬던 자리가 있다. 흙에 몸 부빈 흔적이 남아 있다. 지난번 박그림 선생은 여기에서 산양과 마주쳤다고 한다. 천천히 발밑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큰 바위 앞으로 구절초와 산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었다. 바위떡풀이 바위 여기저기에 붙어서 꽃을 피웠다. 앞에 가는 나무에는 오래 된 영역표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영역표시가 여러 개 있다. 큰 바위 밑으로 많은 산양 흔적들이 있다. 아마도 여러 마리가 모여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바위 밑으로 여러 무더기 똥이 있다. 한 곳은 산양 똥을 누가 퍼다 모아 놓은 듯이 쌓여 있다.
바위 앞으로는 산양 발자국이 쭉 늘어서 있다. 어린 산양들이 무리지어 지나 간 자국이다. 젖은 흙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린 산양들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산양 발자국 방향을 따라 언덕 위에 오르니 또 다른 똥 무더기가 있다. 여기에도 동글동글 검은 콩알 같은 똥과 여름에 묽게 싼 산양 똥이 섞여 있다. 왜, 산양은 이렇게 험한 곳을 찾아 살아야 할까. 아마도 종족이 살아남기 위한 생활 방식이 아닐까 싶다. 산양은 작은 뿔 두 개뿐, 맹수 공격을 막을만한 뾰족한 무기나 힘이 없다. 도망을 가야 한다. 맹수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좁은 낭떠러지 길이나 험한 바위 절벽으로 도망을 가야 한다. 우리가 보는 절경과는 다르게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보금자리도 뒤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막고, 앞은 낭떠러지여서 맹수들이 쉽게 다가 설 수 없는 곳을 택한다. 지금은 맹수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양을 해치는 적으로 사람이 남아 있다. 산양은 맹수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큰 바위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본 뒤 점심으로 주먹밥을 꺼냈다. 별 것 넣지 않고 참기름에 깨 몇 알 넣어 둥그렇게 뭉친 주먹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 원시림을 보았다. 여기저기 늙어 쓰러진 나무, 쓰러진 나무에 파란 이끼와 갖가지 버섯이 피어나고 있다. 바위엔 파란 이끼가 끼고, 바닥엔 관중이 무리지어 자라고, 하늘로는 다래덩굴이 나무를 휘감으며 얽혀 있다. 흙은 부엽토가 쌓여 발이 푹푹 빠진다. 정리 되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투고, 서로 도우며 제 모습을 찾아 살아가는 숲이 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는 짐승들 눈치를 보며 다래덩굴을 흔들어 다래 몇 알을 입에 넣었다. 달고 상큼한 맛이 온 몸에 퍼진다.
산길을 거의 내려와 낮게 고인 계곡물에 다다랐다. 사과 한 알 꺼내어 나누어 먹는데 물이 살짝 움직였다. 가만가만 다가가보니 물두꺼비 한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둘레를 살펴보니 한 쌍이 아니다. 여러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물두꺼비는 짝짓기를 한 채로 겨울잠을 자는데 벌써 겨울잠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가 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쉬는데 도롱뇽 한 마리가 돌 틈으로 꼬물꼬물 기어간다. 눈이 툭 불거지고 꼬리가 몸보다 긴 꼬리치레도롱뇽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물을 보았다. 작은 물고기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어린 꼬리치레도롱뇽이었다. 몇 마리 어린 꼬리치레도롱뇽이 꼬리를 씰룩거리며 물속을 헤집고 다닌다.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올랐다. 살아 있는 물,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자연이 살아 있다. 물두꺼비나 꼬리치레도롱뇽은 일급수에서만 살 수 있다. 뭔가 희망이 보였다. 계곡물을 등지고 한 시간쯤 걸어 내려와 늦은 네 시쯤 다시 백담사에 이르렀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사뿐사뿐했다. 산양 흔적을 비롯한 작은 생명들이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다 망가트려 놓고 복원한다며 호들갑 떠느니 지금 있는 것만이라도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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