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월부터 한여름처럼 몹시 덥다.
무더운 여름이 오면 산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계곡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바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바다 가운데에서도 서해는 갯벌이 넓게 펼쳐진 곳이 많다.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히느라고 많은 갯벌이 없어졌지만…….
‘갯벌’하면 거무스름한 진흙을 생각하지만 바닷가 바위나 모래밭도 갯벌이다.
바위갯벌에는 굴이나 따개비가 붙어살고,
모래갯벌이나 진흙갯벌에서는 게나 고둥, 조개 따위가 어울려 산다.
여름 바닷가에서 놀다보면 모래밭에 동글동글한 모래덩어리를 흔히 본다.
콩알만 하기도 하고 팥알만 하기도 한 모래덩어리는
바로 달랑게 엽낭게가 모래를 주워 먹고 동글동글 내뱉은 모래덩어리다.
너른 모래밭을 뒤덮기도 하고 작은 구멍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때로는 줄을 세워 놓은 듯 가지런하기도 한 모래덩어리는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은 모양이다.
마치 그림을 그린 듯, 누군가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달랑게와 엽낭게는 모래갯벌에 함께 모여 산다.
달랑게나 엽낭게는 모두 아주 작다.
엽낭게는 달랑게보다도 작아서 등딱지가 어른 엄지손톱만 하다.
작은 집게다리로 입에 모래를 떠 넣고
먹을거리를 걸러 먹은 다음, 모래를 뭉쳐 내뱉는다.
서해 바닷가 모래밭을 걷다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물기 머금은 모래밭에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는 친구가 있다.
서해비단고둥이다.
서해비단고둥도 아주 작아서 어른 엄지손톱만 하다.
언뜻 보면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살면서 모래밭에 끝없는 곡선을 그린다.
꼬물꼬물 꾸불꾸불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다닌다.
서해비단고둥이 느리게 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면
바삐 사는 우리를 뒤돌아보게 한다.
빨리 빨리가 대충 대충은 아닌가 하고.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갯벌을 메워서 땅을 넓혀 쌀을 얻고자 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서 거꾸로 얼마나 많은 목숨을 죽이고 잃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으니까.
넘쳐 배부르고 넘친 따스함만이 행복일까?
권정생 선생님은 ‘근근이 사는 게 잘사는 것’이라고 했다.
바닷물이 빠진 바위 웅덩이에는
들어올 바닷물을 기다리는 여러 목숨이 숨 쉬고 있다.
따개비, 담치, 담황줄말미잘……
바닷물을 따라 넓은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살아 있어야 하는 소중한 목숨들.
따지고 보면 엽낭게나 서해비단고둥은 흔하고
그리 쓸모도 없는 목숨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냥 아무런 뜻 없이 살고 있는 목숨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년, 2년, 50년, 100년이 지나야 알까?
그 생명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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