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태세밀화를 그리면서

겨울나기

                                                                         겨울잠을 자는 참지렁이, 꽃뱀, 다람쥐


우리나라 겨울 날씨를 오래전부터 삼한사온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느닷없이 봄 날씨 같다가도 갑자기 추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때는 겨울에 계절을 잃은 봄꽃이 피기도 하고, 지난해는 내가 있는 작업실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씨가 한 달이 넘게 이어져 뒤뜰에 있는 무궁화나무가 얼어 죽었다. 아무리 겨울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겨울이 오면 길러서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이 겨울잠에 들어갔는지가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다. 겨울잠하면 젖먹이동물이나 개구리를 떠올리지만, 춥고 살기 힘든 겨울을 나려고 저마다 지혜를 짜내는 것은 곤충이나 식물도 마찬가지다.

                                                                         겨울잠을 자는 참개구리

자연에서 동물은 추위와 겨우내 모자라는 먹이를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반달가슴곰, 박쥐다람쥐와 같이 쌓아놓은 힘을 조금씩 쓰면서 겨울잠을 자는 젖먹이동물이 있다. 양서파충류 가운데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 도마뱀 따위도 겨울잠을 잔다. 멧토끼, 청설모 같이 겨울잠을 자지 않는 젖먹이동물은 겨울이 오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긴 털로 털갈이를 한다.

                                                                                        도롱이벌레 고치

                                                                                     쐐기나방 고치

사마귀 같이 알을 남기고 늦가을에 죽는 곤충도 많다. 메뚜기, 사슴벌레, 귀뚜라미, 나비 따위가 어미는 죽고 알로 겨울을 난다. 그렇다고 덩그러니 알을 낳고 죽는 것은 아니다. 사마귀는 거품을 내어 알을 보호하는 알집을 만드는가 하면, 쐐기나방이나 도롱이벌레고치(집)를 만들어서 겨울을 난다.

                                                                        옹기종기 모여 겨울잠을 자는 무당벌레

                                                                             한창 식구를 늘린 등검정쌍살벌

                                                                         늦가을 짝짓기를 끝내고 죽은 등검정쌍살벌 수컷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곤충도 있다. 이른 봄에 만날 수 있는 네발나비가 그렇다. 많은 나비와 나방은 늦가을에 알을 낳아 애벌레나 번데기로 겨울을 난다. 하지만 뿔나비, 네발나비, 신선나비 같은 네발나비 무리 가운데 몇몇은 날개를 단 어른 나비로 겨울을 난다. 바람이 적고 가랑잎이 쌓여 포근한 곳이나 오래된 나무구멍 안에서 겨울잠을 잔다.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곤충 가운데 쌍살벌 무리도 있다. 등검정쌍살벌, 두눈박이쌍살벌, 별쌍살벌 같은 쌍살벌은 봄부터 조금씩 벌집을 늘리며 숫자를 늘려 간다. 가을이 되면 여왕벌과 짝짓기를 끝낸 수벌은 죽고 여왕벌만 남아 썩은 나무 틈에서 겨울잠을 잔다. 봄이면 여왕벌은 잠에서 깨어나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숫자를 늘려간다. 많은 곤충이 겨울잠에 들거나 사라져버리고 나면, 곤충을 잡아먹는 긴호랑거미무당거미도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거미줄로 꽁꽁 싸맨 알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겨울철엔 추위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건조함이다. 여왕벌이 썩은 나무둥치를 찾고, 풍뎅이 애벌레가 부엽토 깊은 곳으로 숨어드는 것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몸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까닭이다. 해가 잘 드는 곳은 벌레들이 겨울을 나는 장소로 좋지 않다고 한다. 낮과 밤이 기온차가 큰 계절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겨울을 나다가는 얼었다 녹는 일이 이어져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로제트로 겨울을 나는 달맞이꽃, 꽃마리, 개망초

여름에 무성했던 들풀은 어떻게 겨울을 날까? 들풀은 씨앗이나 알뿌리, 잎과 뿌리 따위로 겨울나기를 한다. 씨앗으로 겨울을 나는 들풀은 강아지풀 같은 것이 있다. 겨울이면 다 말라 죽는 대신 씨앗을 퍼트려서 이듬해에 많은 강아지풀이 돋아나게 한다. 자기는 죽지만 자손을 퍼트리는 셈이다.

                                                                                              반하 알뿌리

반하참나리 같은 것은 알뿌리로 겨울을 난다. 줄기나 이파리는 말라 죽지만 땅속에 알뿌리가 살아남아 이듬해에 다시 싹이 나고 꽃을 피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수선화튤립도 마찬가지다.

                                                                 늦가을 땅으로 내려앉은 뽀리뱅이, 개망초

                                                                                            달맞이꽃

                                                                                              망초

                                                                                          지칭개


겨울에 들판을 걷다보면 이파리를 동그랗게 퍼트리고 살아있는 들풀을 만날 수 있다. 잎과 뿌리로 겨울을 나는 들풀이다. 민들레, 냉이, 꽃다지, 지칭개꽃마리, 달맞이꽃 따위다. 겨울이 다가오면 뿌리에서 난 이파리가 땅에 붙듯이 달려서 겨울을 난다.

                                                                                              꽃다지

이파리 모양이 장미꽃 같다고 해서 로제트(rosette)식물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리가 깔고 앉는 방석 같아서 방석식물이라고 부른다. 로제트로 겨울을 나는 까닭은 꺾일 줄기가 없으니 밟혀도 쉽게 죽지 않는 다는 데 있다. 또 땅바닥에 붙어 있으니 동물에게 쉽게 뜯어 먹히지 않기도 하고 또한 바람에 넘어질 리도 없기 때문이다. 이파리를 겹치지 않게 펼치고 있어서 따뜻한 햇볕과 지열을 많이 받으려는 까닭이기도 하다. 춥고 건조한 겨울을 이겨내려고 적응해가는 슬기로 여겨진다.

자연은 누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지혜를 짜내고 슬기롭게 견뎌 나간다. 우리는 너무 많은 보호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많은 간섭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연이 겨울을 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