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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세밀화를 그리면서

논을 찾는 백로 무리

                                                                            갓 모내기를 한 논을 찾은 황로

우리나라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밥’하면 뭐니 뭐니 해도 하얀 쌀을 떠올린다.

‘쌀’하면 논이 떠오르고,

논에는 벼와 함께 개구리, 미꾸라지, 붕어, 송사리, 논우렁이, 물방개 같은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면서 서로 먹고 먹힌다.

그래서 물고기나 개구리 따위를 먹는 백로 무리가 논으로 온다.


시골 들판에 꽃다지, 냉이 꽃이 피어오르면 농부는 바빠진다.

3월 말쯤 논을 갈고 마른 논에 물을 대면 생명이 꿈틀댄다.

솟쩍 솟쩍 솟쩍다 소쩍새가 울고, 개구리 몇 마리가 울기 시작한다.

4월 말쯤 써레질을 하고 나면 꽉꽉 개골개골 개골개골 꽉꽉

개구리가 논에 모여 짝짓기 하고 알을 낳느라고 온 동네가 떠나갈듯 울어댄다.

이쯤 되면 황로, 백로가 논으로 날아든다.

5월 중순쯤 모내기를 하면 백로가 점점이 하얀 수를 놓듯 논을 드나든다.


작업실 앞 논을 찾는 백로 무리는

황로,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가 있다.

왜가리는 앞 논은 잘 찾지를 않지만 다른 논에서 종종 본다.

백로 무리는 몸 깃이 하얗고 긴 부리, 긴 목, 긴 다리를 가진 새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부리나 눈언저리, 다리 빛깔이 많이 바뀐다.

                                                                               써레를 따라다니는 황로

                                                                       써레를 따라다니며 먹이다툼을 하는 황로

황로 겨울깃은, 쇠백로 같이 온몸이 하얗다가

여름깃은 머리부터 목까지 주황빛을 띤다.

다른 백로보다 부리가 두툼하고 목이 짧다.

논에 써레질을 할 때 황로를 지켜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황로 대여섯 마리가 펄쩍펄쩍 뛰면서 써레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써레가 뭉쳐 있는 흙을 부드럽게 풀면서 지나가면

숨어있던 개구리나 미꾸라지가 밖으로 뛰쳐나오게 되고.

황로는 이때다, 하고 먹이를 잽싸게 낚아챈다.

이런 황로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로도 보인다.

                                                                                    먹이를 노리는 쇠백로

몸이 작은 쇠백로 여름깃은 뒷머리에 두 가닥 장식깃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백로와 뚜렷이 다른 것은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는 거다.

새 이름 앞에 쇠오리, 쇠기러기 같이 ‘쇠’를 붙이면 작다는 뜻이다.

쇠백로가 먹이를 잡을 때는

논을 살금살금 걷다가 먹잇감이 숨어 있다 싶으면

노란 발가락으로 흙을 쿡쿡쿡쿡 밟으며 먹잇감을 몰아

뛰쳐나오게 해서 날카로운 부리로 냉큼 잡아먹는다.

우리가 족대로 물고기를 잡을 때 발로 물고기를 몰아 잡는 것과 같다.

                                                                    몸집 크기가 다른 쇠백로(왼쪽)와 중백로(오른쪽)

몸 크기가 중간인 중백로 여름깃은

겨울에 노랗던 부리 끝 쪽이 검게 바뀌고 목과 등에 장식깃이 여러 가닥 난다.

눈언저리와 눈과 이어지는 부리 한 켠은 노란빛을 띤다.

                                                                                    몸집이 큰 중대백로

몸이 큰 중대백로 여름깃은 등에 장식깃이 여러 가닥 나고

눈언저리가 짙은 옥빛으로 바뀐다.

중대백로쯤 되면 멀리서 보아도 참 크게 보인다.

몸길이가 90센티미터나 되니까 벌써 걸음걸이가 다르다.

                                                                          우포늪에서 겨울을 나는 왜가리

몸집이 더 큰 왜가리몸빛깔이 잿빛이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러 가지 백로가 무리지어 있다면 몸집 크기로도 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따로따로 있으면 비슷비슷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냥 하얀 물새네, 하는 것보다는 ‘백로’라고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내 이름이 ‘개똥이’인데 ‘가뚱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그냥 백로 보다는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황로로 부르면 좋지 않을까.

사람이 그렇듯이 자연도 이름을 불러주면 훨씬 더 가까워 질 수 있다.


                                                                    한여름 둥지를 떠나 논을 찾은 어린 중대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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