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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세밀화를 그리면서

마당에서 누리는 호강 시골집 좁은 마당, 몇 그루 나뭇잎 지고 난 나무에 참새 박새 쑥새, 노랑턱멧새 직박구리가 늘 찾는다. 매일 보아도 마냥 반갑다. 겨울 집 앞 논에는 쇠기러기 떼가 자주 날아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대백로가 집 앞 논에서 쉬었다 간다. 아주 가끔 독수리가 앞 산 언저리를 떠돌다 가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아쉽고 마음이 설렌다. 눈이 쏟아지고 녹고, 겨울이 가는 날에 뚜룻 뚜루루 뚜룻 뚜루루 어렴풋 두루미 소리가 들렸다. 놀랍다, 집에서 두루미를 보았다! 집 앞 하늘에 재두루미가 또렷이 나타났다 서서히 사라진다. 조금 뒤, 재두루미 무리가 또 지나갔다. 뒤이어 재두루미가 사라진 하늘을 휘감으며 독수리가 집 앞으로 왔다. 뜻밖이고 참 드문 날이다. 집에 앉아서 누릴 수 있는 호강은 다 누린 날이다. 더보기
빨간 열매 서리가 내리고, 배추와 무 이파리가 얼었다 녹는다. 늦은 벼 베기 하는 농부가 바빠도 둘레에서 영그는 빨간 열매가 속 태우는 마음을 누그린다. 가지가 잘리고 잘려도 늦가을이면 푸른 하늘에 빛나는 노박덩굴 열매. 검푸른 이파리에 숨어서 붉게 익는 주목 열매. 진딧물이 들끓어도 다시 이파리를 내는 찔레나무, 열매. 봄은 맑디맑은 꽃, 가을이면 새큼 달콤 맛을 주는 산수유 열매. 약이든 제상이든 달달한 맛을 주는 대추나무 열매. 사과나무 뿌리가 되는 검붉은 아그배나무 열매. 이파리가 붉어도, 더 할 수 없게 붉게 빛나는 화살나무 열매. 일 년을 다시 시작 하려는 가을에 붉게 익어가는 열매. 사람이 먹든, 새가 먹든, 털짐승이 먹든, 썩어 떨어져도 자연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어, 사는 흐름을 알린다. 더보기
투구꽃과 꽃무릇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갈 때면 떠오르는 꽃이 있다.꽃모양이 투구를 닮은 투구꽃, 꽃빛깔 또렷한 꽃무릇이다.꽃모양도 남다르고 꽃빛깔도 아름답지만 아주 강한 독을 품은 풀이다. 집 뒤 산기슭에 핀 투구꽃 집 뒤 산기슭에 핀 투구꽃 진보랏빛 투구꽃은 해를 거르지 않고 집 뒤 산기슭에 핀다.말린 덩이뿌리는 강한 독이 있어서 예전에 사약 재료로 썼다 한다.독을 걷어 내는 약재와 함께 쓰면 우리 몸에 이로운 약이 된다 한다. 요즘 들어서도 투구꽃 달인 물을 먹여 사람을 살해한 일이 있다.덩이뿌리를 말린 약재를 초오, 토부자라고도 하는데어릴 적 기억에는 토부자를 잘못 먹어서 몸과 정신이 나빠진 동네 어른이 있었다.사실은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고 꽃은 그 안에 숨어 있다.어찌되었든 매해 가을에 볼 수 있는 것만으.. 더보기
개별꽃 그리기 늦은 봄 숲 가장자리에서 개별꽃을 자주 본다.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서 흰 꽃이 핀다.흰 꽃잎에 수술 꽃밥이 검붉어서 눈에 띤다.개별꽃 이름은 ‘개’와 ‘별꽃’이 합쳐진 것이다. 이름 앞에 ‘개’가 붙었으니 작거나 모자라서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개별꽃은 별꽃보다 작지도, 모자라지도 않다.오히려 별꽃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풍성하다.약 효능도 좋아서 쓸모가 많은 풀이라고 한다. 먼저 밑그림을 꼼꼼히 그린다. 밑그림은 건축하기에 앞서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구도만이 아니라 그리는 생명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공부가 필요하다. 어떤 이는 이제 밑그림은 그만 그려도 되지 않느냐고 한다.하지만 늘 그리는 생명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기에 늘 그린다. 밑그림이 되면 채색할 종이에 옮겨 그린다.다시 연필로 꼼꼼히 그린.. 더보기
울타리에 능소화가, 늪에는 연꽃이 집 울타리에 저절로 삼 년째 능소화가 핀다. 어디선가 씨앗이 굴러들어와 싹이 트고 자랐다. 가지 끝에 나는 꽃대에 화사한 꽃이 주렁주렁 달린다. 큼직큼직한 꽃이 기품이 있고, 점잖고 화려하다. 옛날에는 양반네만 심을 수 있어서 양반꽃이라 했단다.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어디서나 자라는 덩굴나무다. 줄기에 흡착뿌리가 있어서 벽이나 다른 나무를 잘 타고 오른다. 서울 강벽북로에 흐드러지게 피는 걸 보면 공해에 무척 강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꽃밭에는 100일 동안 붉게 꽃이 피는 백일홍(멕시코 원산)이 흔하다. 배롱나무도 100일 동안 꽃이 핀다고 백일홍, 백일홍나무라 부른다. 능소화도 6월 말부터 9월까지도 붉은 꽃이 피니 백일홍이라 할 만하다. 마당에 지름이 1미터쯤 되는 작은 연못을 만든 적이 있다. .. 더보기
메꽃과 나팔꽃 여름 들녘 길가에 메꽃이 흔하다. 둥글둥글 환하게 핀 연분홍빛 메꽃을 만나면 언제나 질리지도 않고 들여다본다. 들여다보고 들여다보아도 열매를 본 적이 없다. 가끔 학교나 도서관에서 독자를 만난다. 이야기를 하면서 화면에 연분홍빛 메꽃 그림이 비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나팔꽃’이라고 합창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는 꽃을 보니 반가웠을까? 하기야 깔때기 같은 꽃모양을 보면 비슷하기도 하다. 꽃빛깔이 연분홍 메꽃은 토종이다. 메꽃, 큰메꽃, 애기메꽃을 따져보아도 연분홍빛이다. 조금 여리고 진할 뿐, 바닷가에 사는 갯메꽃도 연분홍이다. 토종 같은 나팔꽃은 인도에서 옮겨왔다. 나팔꽃 꽃빛깔은 여러 가지다. 흰빛, 붉은빛, 남보랏빛, 진분홍빛…… 남빛도 있다. 메꽃 이파리는 길쭉하면서 끝이 뾰족해진다. 잎자루.. 더보기
농게와 도둑게 한 쪽 집게발이 아주 큰 농게 수컷 순천만 하면 우글거리는 게가 떠오른다. 그 가운데서도 몸빛깔이 붉은 농게다. 농게 하면 한 쪽 집게발이 아주 큰 수컷 농게를 떠올린다. 양쪽 집게발 크기가 작고 같은 농게 암컷 그러다보니 양쪽 집게발이 아주 작은 암컷 농게는 그냥 지나칠 때가 있다.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둥근 갈대밭 많은 사람은 순천만을 둥근 갈대밭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갯벌에서 새로 돋아나는 갈대며 칠면초가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와온해변에서 바라본 갈대밭 일 년에 빛깔이 일곱 번 바뀐다고 칠면초란다 갈대와 칠면초 새로 돋아나는 갈대 이파리와 겨울을 난 갈대 이삭이 가을에 막 이삭이 패는 갈대와 같다. 여기에 짙은 분홍빛 칠면초와 만나는 빛깔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 더보기
무당벌레와 이십팔점무당벌레 무당벌레 날개돋이 - 오른쪽 - 갓 번데기가 되어 빛깔이 옅은 무당벌레 번데기 왼쪽 - 시간이 지나서 빛깔이 짙어진 무당벌레 번데기 가운데 - 갓 날개돋이를 해서 속날개를 말리는 빛깔이 옅은 무당벌레 올해 들어 집 둘레로 까마중이 무더기로 돋아났다. 어릴 적 검게 익은 까마중 열매를 따먹던 생각이 나서 그대로 두었다. 까마중이 자라면서 까마중 이파리를 갉아먹는 이십팔점무당벌레를 자주 보았다. 장맛비가 지나간 뒤 까마중은 허리춤까지 자랐다. 할 수없이 까마중을 베었다. 까마중 이파리를 갉아먹고 짝짓기 하는 이십팔점무당벌레 그런데, 베어낸 까마중에는 노란빛 이십팔점무당벌레 애벌레와 번데기가 우글거렸다. 베지 않은 까마중을 들여다보니 무더기 무더기로 알을 낳아놓았다. 까마중 이파리 뒷면에 낳아놓은 노랗고 길쭉.. 더보기
한식 즈음에 무덤가에서 만난 제비꽃 둥근털제비꽃 다른 해 같으면 마당에 냉이 꽃다지가 피어오르고 제비꽃이 보랏빛 꽃봉오리를 내밀 듯도 한데 아직 소식이 없다. 한식이면 돌아가신 어르신들 무덤을 찾는다. 처음 몇 해는 짠한 마음도 들지만 해가 거듭되면 그저 봄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간다. 무덤가를 둘러보면 바삐 움직이는 개미부터 웅덩이에 개구리 알, 냉이, 꽃다지, 조개나물, 양지꽃, 솜나물, 큰구슬붕이 따위가 꽃망울을 터트린다. 꽃 가운데서도 늘 잊지 않고 피는 제비꽃이 있다. 온몸에 솜털이 부숭부숭한 둥근털제비꽃. 새로 돋아나는 이파리가 고깔을 닮은 고깔제비꽃 이파리가 알록알록한 알록제비꽃 그리고 어디에서나 많이 피는 호제비꽃 무슨 일 인지? 반 토막 난 일본왕개미가 조각처럼 서 있고…… 이제 아이들은 다 커버렸고 무덤을 바라보는 내 마음.. 더보기
머리깃을 세우고 마당을 찾는 쑥새와 노랑턱멧새 머리깃을 세우고 눈 덮힌 마당에서 먹이를 찾는 쑥새 작업실 뒤곁과 앞마당에는 열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다. 그래서 사시사철 마당에 온갖 새가 찾아든다. 나무 가운데서도 가지가 빽빽한 명자나무는 작은 새가 자주 찾는다. 쑥새 마당을 찾는 새 가운데 머리깃을 자주 세우는 새가 있다. 쑥새다. 쑥새는 겨울철새라서 겨울 언저리에만 마당을 찾는다. 노랑턱멧새 머리깃을 자주 세우는 녀석이 또 있다. 쑥새와 생김새나 크기가 비슷하지만 눈썹선과 턱이 노란 노랑턱멧새도 사시사철 마당을 찾는다. 겨울은 새나 야생동물에게는 먹이가 모자라는 철이다. 더군다나 눈이 오면 먹이를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마당에 눈이 잔뜩 쌓인 날 눈 위를 걸으며 먹이를 찾는 쑥새와 노랑턱멧새를 자주 본다. 그나마 바랭이나 강아지풀 이삭 몇 가닥이.. 더보기